본격 번역으로 팬픽쓰는 번역가

전에 배스커빌의 개에 대해, 완역을 읽고 받은 충격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만…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먼산을 바라보게 한 장면이 또 있었습니다.
[쇼스콤 고택]인데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자, 여기서 내리세.”
호움즈는 마부에게 두둑한 수고비를 주고 마차에서 내렸습니다.
여인숙 앞에선 예순이 넘은 듯한 백발 노인이 열심히 장작을 패고 있었습니다. 여인숙 주인인 버어네스가 틀림없었습니다.
“할아버지, 우린 새벽에 런던을 떠났기 때문에 아직 아침을 못 먹었는데, 식사 좀 할 수 있을까요?”
호움즈는 어깨에 메고 있던 낚싯대를 내리면서 물었습니다.
“예, 치킨 오믈렛과 베이컨 에그스 정도라면 되겠습니다만…”
“아무 거라도 좋으니, 빨리 해 주십시오.”
우리는 오른쪽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식당은 텅 비어 있었으며, 벽에는 박제된 커다란 송어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뒤뜰에서 개가 컹컹 울어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 정감넘치는 시골 여인숙
“할아버지, 저 개는 울음소리를 들으니 스파니엘 같은데, 어째서 저렇게 울어 대지요?”
“예, 저 스파니엘은 우리 개가 아닙니다. 저택의 백작부인이 귀여워하시는 아이다라는, 좋은 품종의 스파니엘인데, 일주일 전에 괴수 남작, 아니, 로버트경이 끌고 오셔서, ‘할아범, 이놈이 짖어 대면, 말이 안정되지 못해 곤란해. 더어비가 끝날 때까지만 맡아 주게. 알겠나? 쇠사슬에 단단히 묶어 두게. 더어비가 끝나면 크게 사례하겠네.’ 하시면서 맡기고 가셨죠. 실은 저 개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습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먹지 않고, 밤낮 저렇게 컹컹대기만 하니, 정말 시끄러워서 못 견디겠어요.”
호움즈는 나에게 눈짓하고 뒤뜰로 나갔습니다. 개집앞에는 크리임색 털이 복실복실하며, 귀가 축 늘어진 스파니엘종 개가 가느다란 사슬에 묶여 킹킹 울고 있었습니다.
“쯧쯧, 아이다, 왜 그렇게 울기만 하니? 자, 맛있는 것 줄께 얌전히 있어라.”
호움즈는 더러워진 개밥 그릇을 깨끗이 닦고, 조금 전에 먹다 남긴 베이컨을 담아서 아이다 앞에 내밀었습니다. -> 애견인 홈즈
아이다는 잠시 냄새를 맡아 보더니, 곧 깨끗이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는 더 먹고 싶은 듯이 꼬리를 흔들며 호움즈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니, 이거 웬일이야! 아이다가 꼬리치는 건 처음 보겠네. 손님은 개를 여간 좋아하지 않는가 보죠.” -> 개도 알아보는 애견인 홈즈
뒤따라온 여인숙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니오, 개가 나를 좋아해요. 할아버지, 우린 지금부터 낚시하러 갈 텐데, 아이다를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쇼스콤 고택, 계림문고 번역본.
제가 참 좋아했던 낭만적인 여인숙 정경과 애견인 홈즈와 불쌍한 스패니엘 아이다의 만남. 근데 원작에는 이런 장면은 없더라구요ㅜㅜ 그저 단서를 알아내기 위한 탐색뿐…ㅠㅠ
번역가는 멍멍이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여기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단편 말미에 홈즈는 아이다의 거취에 대해서도 걱정합니다. 역시 애견인. 아니 번역한 사람이 애견인인가;
근데 한국출판공사의 호움즈 시리즈에도 같은 장면이 실려있더라구요. 어느쪽이 갖다 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ㅎ

[On reaching our destination a short drive took us to an old-fashioned tavern, where a sporting host, Josiah Barnes, entered eagerly into our plans for the extirpation of the fish of the neighbourhood.
“What about the Hall lake and the chance of a pike?” said Holmes.
The face of the innkeeper clouded.
“That wouldn’t do, sir. You might chance to find yourself in the lake before you were through.”
“How’s that, then?”
“It’s Sir Robert, sir. He‘s terrible jealous of touts. If you two strangers were as near his training quarters as that he’d be after you as sure as fate. He ain’t taking no chances, Sir Robert ain’t.”
“I’ve heard he has a horse entered for the Derby.”
“Yes, and a good colt, too. He carries all our money for the race, and all Sir Robert’s into the bargain. By the way” — he looked at us with thoughtful eyes — “I suppose you ain’t on the turf yourselves?”
“No, indeed. Just two weary Londoners who badly need some good Berkshire air.”
“Well, you are in the right place for that. There is a deal of it lying about. But mind what I have told you about Sir Robert. He’s the sort that strikes first and speaks afterwards. Keep clear of the park.”
“Surely, Mr. Barnes! We certainly shall. By the way, that was a most beautiful spaniel that was whining in the hall.”
“I should say it was. That was the real Shoscombe breed. There ain’t a better in England.”
“I am a dog-fancier myself,” said Holmes. “Now, if it is a fair question, what would a prize dog like that cost?”
“More than I could pay, sir. It was Sir Robert himself who gave me this one. That’s why I have to keep it on a lead. It would be off to the Hall in a jiffy if I gave it its head.”]

[My companion seemed to have no further plans for the day, and we did actually use our fishing tackle in the mill-stream with the result that we had a dish of trout for our supper.]

이 한 문장은 아래와 같이 늘어났습니다. 이 낚시 장면 소풍같아서 참 좋아했는데, 번역가가 훌륭한 팬픽작가였어요.

내를 따라 2킬로미터쯤 가자, 여인숙 주인이 가리켜 준 대로 꽤 큰 호수가 있었습니다.
“와트슨, 내가 낚시를 하고 있는 동안에 자넨 아이다를 데리고 이 근처를 산책하게.”
“좋아. 자, 아이다, 이리 오너라.”
나는 아이다의 사슬을 잡아당겼으나, 아이다는 발을 땅에 붙인 채 호움즈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 봐라! 이 개는 이제 나를 완전히 따르는군그래. 좋아, 그럼 여기 앉아서 내 멋진 낚시 솜씨나 구경하라구.”
호움즈는 뽐내며 낚시에 미끼를 꿰어 호수에 집어던졌습니다. 그러나 2시간에 지나도록 낚아올린 것이라곤 길이 20센티미터도 채 못 되는 송어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호움즈, 자넨 범인을 잡는 일은 잘 하지만, 낚시질은 서투르군그래.”
“하하하, 자네 말이 맞아. 이제는 슬슬 여인숙으로 돌아가세.”
우리가 아이다를 데리고 여인숙으로 돌아오자, 주인이 뛰어나와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니, 단 한 마리뿐이군. 이건 반찬도 되지 않겠어. 그럴 줄 알고 저녁 식사에 쓸 쇠고기는 준비해 두었지요. 선생님, 송어 낚시는 새벽이나 저녁때가 아니면 무리죠. 오늘밤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새벽에 나가 보시오.” -> 저녁식사거리를 낚아왔다는 원작을 아예 바꿔버린 건 귀여움을 노린 의도였을까요.
“그렇게 해야겠군요. 저녁 식사 좀 빨리 주시오. 아이다 몫도 말이오.” -> 아이다의 저녁식사도 챙기는 애견인 홈즈
“아이다란 놈이 선생님에게 정이 든 모양이군요. 덕분에 오늘밤엔 킹킹거리지 않겠군.”

안녕, 애견인 홈즈.
아니 근데 하긴 여기에서 자기가 개를 좋아한다고도 했고(단서를 얻기 위해 그런 말을 한 듯한 기분이 들긴 합니다만) 토비도 홈즈를 좋아하고;; 주홍색 연구에서 멍멍이에게 실험을 하긴 했지만 집주인이 안락사시켜달라고 했다고는 했고;; 뭐 나름 그 시절에는 애견인…;;

This Post Has One Comment

  1. 캐스트너

    크하하, 이거 정말 너무하는데요?
    개의 행태에 대해서 관심이 많긴 한데(개는 곧 그 집안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이다 운운하죠) 애견인 홈즈 모습을 잘 안 그려져요.

    계림문고판이나 한국출판공사판이나 둘 다 일본판을 갖다 썼으니 그 일본 번역가(라고 쓰고 ‘개작가’라고 읽는다)가 원인제공자이겠지요. 저번에 은희님이 빌려주신 계림문고판을 대충 훑어보며 느꼈지만 이 아동용 중역판들은 전반적으로 홈즈를 감정 표현도 풍부하고 굉장히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으로 바꾼 것 같더라고요. 톡 쏘는 신랄한 구석이나 홈즈 특유의 ‘한기’가 전혀 없어요.

    당시에도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운동이 활발했는데 과학의 이름으로 시체도 매질하는 홈즈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하긴 합니다.

    참말 귀엽죠.
    작품 전개와는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퍽 좋아하던 부분인데 사실 많이 아쉽습니다ㅠ_ㅠ
    토비가 잘 따르는 거나 베이커가 애들이 잘 따르는 걸 보면 애견인까지는 아니라도 어린 것들과 잘 놀아주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 멍멍이 번역진은 캐릭터를 재해석해서 번역 가이드라인을 짜기라도 했나봐요. 나름 일관성이 있지 않나요. 이런 캐릭터 재해석은 영상이나 라디오처럼 다른 매체로 옮겨갈 때나 생길 것 같은데 재밌네요ㅎㅎ

    본인 몸을 대상으로도 실험하는 사람인데요 뭐;; 동물실험 하기도 했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생각을 갖고 있을 거에요ㅠ 하지만 자기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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