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 쪽으로/편혜영
작년에 백의 그림자를 읽을 때 들었던 얘기였던 것 같은데, 한국문학이 점차 장르문학과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고 그것에는 생산자나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고 새로운 문법구조를 지닌 장르문학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이식받는 의미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읽었던 백의 그림자도 그렇고, 사육장 쪽으로도 환상소설이나 공포소설같은 한국문학임을 감안하면 새로운 분위기이긴 한데- 이거 정말 새로운 세대다, 라고 하기에는 장르문학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협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르문학은 그 자체로 이미 상당한 역사와 내적인 문법이나 재생산 구조를 갖고 있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비슷한 구조의 책을 읽고 새롭다고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냐는 거죠.
예를 들어 소풍은 워드 무어의 [현대판 롯]의 여성화자버전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몰리는 그 차에서 내려 속이 시원할 수도 있겠네요. 그 상황에서 탈출은 못 하겠지만, 어디에서 핵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차타고 도망가봐야 별 수 있나요.) 전원주택에 사는 30대 부부는 아이가 있는데도 그동안 살아온 동네에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헤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 익숙한 일상이 공포가 되고 짜증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는 것은 공포소설에서는 아주 익숙한 장치가 아닌가요. 이런 형식에서 한국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보고 있다면… 솔직히 좀 갑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려 제가 편혜영의 책에서 인상적으로 본 것은, 여러 화자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20대 여성의 초상이었습니다. 실패도 성공도 책임져 본 경험이 없어 자기 판단을 자기도 신뢰할 수 없는 그런 자아, 그런 공포요. 화자가 20대 여성이 아니고 30대 가장이거나 직장인이거나 밤의 도시를 누비는 늑대사냥꾼이더라도 그런 자아를 갖고 있어요. 주목할 부분이라면 차라리 이쪽이지 싶습니다.
+
사육장의 개는 마초적이고 무서운 존재인데 도망친 늑대나 도망친 코끼리는 야생성을 상징하는 낭만적인 존재인 것도 대조적이에요. 도망이라.
소풍
사육장 쪽으로
동물원의 탄생
밤의 공사
퍼레이드
금요일의 안부인사
분실물
첫번째 기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