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있는 영화는 모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심지어 결말 스포일러도…!!!
– 120BPM
프랑스의 에이즈 인권운동단체인 액트업 파리의 활동을 담은 영화입니다. 런던 프라이드처럼 유쾌하고 감동적인 내용이려니 하고 보러 갔는데 프랑스 영화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생각이었어요. 액트업 파리 회의의 토론 장면이 러닝 타임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모임의 두 사람이 연애하는 장면에서는 매우 적나라한 섹스신이 등장하고, (그리고 이렇게 적나라한데도 저는 두 사람이 결국 콘돔을 사용했다고 봤는데 다른 감상기를 보니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본 사람이 있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당시 액트업 파리의 주요한 활동 내용 중의 하나가 콘돔 사용을 홍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에이즈로 한 사람이 죽는 과정은 길고 고통스럽습니다. 매주 큰 강의실을 꽉 메운 활동가들이 칠판 가득 의제를 늘어놓고 회의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면서도 부러웠습니다. 매주 제출되는 의제야 지난 투쟁이 성공적이었으니 아니었느니 이번 성명서가 포퓰리즘이니 포퓰리즘이라니 지금 나를 공격하는 거냐(성명서 작성자)느니 등등 약간씩 바뀌면서 반복되는 거였지만 저 지난한 과정이 사람들을 단련시키고 결국 국가정책과 기업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냈겠지요.
당시 액트업 파리의 실제 활동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감독은 액트업 파리의 활동가 출신이라고 합니다.), 백인 남성이 활동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에도 여성과 흑인 남성이 주요 활동가를 맡고 있고, 회의 중간에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데 통역을 통해 느릴 수 밖에 없는 그 사람과의 소통에 집중하는 모습이 현재에 맞게 약간 바꿨다고 해도 자연스럽고도 좋았습니다. 신입 참가자들에게 설명하는 발언 15분 룰, 손가락을 튕겨서 찬성 의사를 밝히고, 스~ 하는 소리를 내서 반대 의사를 밝히는 방법등도 박수나 야유는 발언자의 발언이 안 들릴 수 밖에 없는데 1분이라도 시간을 아끼려 하는 재치있는 방법이었구요. 활동을 같이 하는 이상 세상을 여러분을 에이즈 보균자로 볼 거에요, 하던 충고도 기억에 남습니다.
– 블랙 팬서
4월 5월에도 블랙 팬서를 여러 번 봤습니다./ㅂ/
– 그날, 바다
세월호의 선박자동식별장치 항적도를 추적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항적도를 분석해서 닻에 의해 급변침한 것이 침몰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어요. 김어준씨와 감독인 김지영감독은 이 주장을 오래 해 온 것 같은데, 정권도 바뀌었으니 선조위가 잘 조사해서 결과를 내놓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콜럼버스
존 조와 건축이라는 키워드 두 개만 알고 갔는데 화면이 매우 단아하고 정갈한 영화더라구요. 프레임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존 조는 건축가인 아버지가 미국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한국에서 하던 번역일 중단하고 급하게 미국에 온 교포이고, 건축을 좋아하지만 경제적인 이유와 약물 중독에서 회복하고 있는 어머니 옆에 머물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케이시와 만나게 됩니다. 둘은 처음에 건축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만나게 되지만 점점 친해지면서 부모에 대한 얘기를 서로에게 하게 되죠. 마음에 남는 장면이 둘 있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자식이 큰 소리로 곡하지 않으면 부모의 영혼이 죽어서 좋은 곳에 가지 못하고 객귀가 된다고들 믿고 있어서 아버지가 회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어렵사리 고백하는 진의 이야기를 다른 문화권의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궁금했고, 좋아하는 건축물을 소개해 주며 이런 저런 건축적인 장점을 얘기해주는 케이시에게 진이 좋아하는 이유를 얘기해달라고 계속 격려하고 케이시가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이유를 얘기할 때 카메라가 슬쩍 빠지면서 대사는 들려주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케이시의 얼굴만 보여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 레이디 버드
이 영화 정말 재밌습니다ㅠㅗㅠb 세크라멘토에 사는, 자기를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천방지축)열일곱살 소녀 얘기에요. 열일곱살 소녀가 나오는 성장영화에 나올 만한 건 다 나옵니다. 엄마와의 갈등, 단짝 동성친구, 처음 사귀는 이성친구, 학교생활, 대학진학, 가정경제. 자기를 약속한대로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지 않는다고 엄마가 몰던 차에서 뛰어내리는 딸내미나(다음 장면에서 결국 한 쪽 팔에 깁스를 하고 등장합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기는 하겠지만 좋아해? 하고 묻는 딸에게 가볍게 그렇다고 대답해주지 못하는 엄마나 둘 다 너무 닯았어요. 취업도 못 하고 있는 아들의 여자친구도 자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엄마나 게이인 것을 숨기려고 자신과 사귄 남자친구를 결국 안아주는 레이디 버드도 닮았구요. 둘이 싸우기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드레스를 보러 가서도 말다툼을 하다 엄마가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집어들자 같이 환호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팔려고 내놓은 좋은 집들을 보러 다니는 모녀의 모습은 정말 즐거워 보였습니다. 엄마 얘기만 잔뜩 했지만 가톨릭계 학교라고 해도 뭔가 유머 감각이 있는 학교의 선생님들이나 친해지고 멀어지고를 겪는 친구들의 모습들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솔직히 이런 드센 캐릭터 안 좋아하는데 결국 레이디 버드는 저에게 사랑스럽다는 말을 들어 내고야 말았습니다…ㅎ
뉴욕의 학교로 진학하고 싶어하는 레이디 버드를 위해 가족은 결국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진학시키고, 취업 인터뷰를 하고 나오다 같은 회사에 면접을 본 아들과 마주친 아버지의 미묘한 표정은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취업을 포기할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아서 더 애틋한 것이 있습니다.
–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블랙 팬서를 너무나 재밌게 본 저는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각자 솔로 영화를 갖고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유기적으로 엮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냥 잘했구나 이 생각이나 들었고… 우주 디자인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두번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역시나 비싼 스튜디오 몇 개에 하나씩 맡긴 것 같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미학적 일관성도 없고… 그리고 아마도 그랬을 것 같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타노스의 말도 안되는 얼굴과 말도 안되는 얘기를 삼십분 동안 봐야 했고… 무엇보다 트찰라가 3분 30초만 나왔습니다.
히어로들 다 죽여버린 후 시간을 돌리는 건 바로 몇년 전에 엑스맨에서 써먹은 방법이고… 식량 없다고 인구의 반을 죽이는 건 스타트렉에서 옛날옛적에 써먹은 방법이고… 토르가 망치 만드는 용광로 장면은 호빗에서 써먹은 용광로 방법이고… 떼로 밀려드는 오르크들 아웃라이더들을 앞에 두고 트찰라가 자기 군대에 이범배를 외치는 장면은 반지의 제왕 3편에서 세오덴이 죽음을 부르짖던 장면이고… 심지어 너무 짧습니다. 세오덴이 자기 부하들에게 이 전쟁의 의미에 대해 소리높여 이야기하고 그 대의에 전군이 동의하고 돌진하는 전율같은 건 없었죠. 왜 이 전쟁이 와칸다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나는 영화가 아니고 영화 밖의 배우나 감독의 인터뷰에서나 얘기하고 있고… 타노스가 나올 때마다 그래 이래서 내가 히어로영화를 안 봤지 하는 성찰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시간이 삼십분이었고… 다음 블랙 팬서 영화에 타노스같은 악당이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에 젖어서 나왔습니다.
뭐 다음 영화도 보긴 보겠죠. 트찰라가 3분 30초는 나올 테니까요…
– 얼리맨
아드만 스튜디오 작품이고 원시인들이 고대인들과 축구하는 에니메이션입니다. 예전에 치즈 얘기나 치킨런 재밌게 보긴 했지만 조카가 없었으면 안 봤겠죠…ㅎ 등장인물들이 오리 타고 축구장 가는 장면이 젤 재밌었어요-ㅂ-
– 청년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20대 후반을 다루고 있는데 매우 재밌었습니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다른 실제인물을 다룬 영화, 스티브 잡스나 다키스트 아워 등에 비하면 좀 심심할 수도 있는 구성인데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시간을 따라가서 좋더라구요. 다큐멘터리 같은 톤의 화면도 좋았구요. 영화 전단지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우정*이라든가 *브로맨스*를 부각시켰지만 예니와 메리를 매우 성의있게 다룬 것이 좋았습니다. 그 자연스럽고 고민깊은 방식을 보니 우리는 여성 해적 두목도 다룬다고!!! 빠ㅁ빰빰 하던 한 솔로 스토리가 떠오르며 매우 비교되더군요. 영화는 1948년의 막이 오를 무렵 끝납니다. 청년시절을 끝내는 시기로 매우 적절해 보였어요…ㅠㅠ
얼리맨! – 아드만 작품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하니 저는 꼭 봐야겠네요.
어린양 숀인가 그것도 봐야하는데……
조카들이 좀 커서 이젠 애니메이션 보러 가잔 말을 안 해서 놓쳤음. (하지만 이제 조카들이 마블을 졸업한 거 같아 넘 기뻐요~ 물론 인피니티워는 1편을 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편도 보겠다고 했지만 자기도 이제 당분간 마블 쉬겠다고 했으니 설마 캡틴 마블 나올 때 보러가자고 하진 않겠지?)
트찰라가 3분 30초 나왔군요. 정말 몹쓸 편집이다…
트찰라 3분 30초 볼려고 2시간 반짜리 재미없는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할 만하네요. 은희 씨가 블랙팬서 재개봉했을 때 한번 더 봤다고 살짝 놀랐는데, 아, 그런 억울함은 블랙팬서 재관람으로 달래줘야죠. 암요~
타노스는 정말 입만 열었다 하면 나오는 개소리도 개소리지만(우주의 균형이 그렇게 걱정되면 우주상수나 연구해라 이 자식아!) 우선 그 생김새 때문에 용서가 안 됩니다. (그래요 난 외모지상주의자입니다;;)
청년 마르크스는 저도 괜찮았어요. 상업영화 틀안에서 적당히 romanticize된 면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하나 (특히 엥겔스가 메리와 만나는 장면 같은 대목은 전형적인 청춘영화 톤이 느껴짐) 첫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죠. 마르크스가 라인신문에 기고한 글(사유지 숲에서 장작을 집어가는 행위와 그것을 처벌하기 위해 동원되는 폭력을 묘사하면서 국가 폭력과 결탁한 사유재산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내레이션으로 나오면서 그 장면을 실제로 묘사하는 도입부 말이에요. 그 장면이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