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말했듯이 근 2년 동안에 빠리는 여러 번 반란을 경험해 왔다. 폭동이 일어난 지역을 제외한 빠리의 각 지역은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으레 묘한 정적에 싸이곤 했다. 빠리는 무슨 일에나 곧잘 익숙해지는 것이다. -고작해야 폭동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빠리는 그 정도의 일에 구애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건 또 빠리가 대규모의 도시인만큼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광대한 지역만이 그처럼 내란과 동시에 일종의 뭔가 묘한 정적을 함게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구경꾼들은 전투가 한창 벌어진 거리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극장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통속 희극을 상연하고 있고 역마차는 왔다갔다하고 사람들은 밖으로 식사를 하러 나갔다. 때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지역에서도 이런 형편이었다. 1831년에는 결혼식 행렬을 통과시키기 위해 소총 사격이 일시 중단된 일도 있었다. 1839년 5월 12일의 반란 때는 병자같이 보이는 자그마한 노인 한 사람이 뭔가 음료수를 담은 유리병과 삼색기를 손수레에 싣고 바리케이드에서 군대 쪽으로, 또 군대 쪽에서 바리케이드 쪽으로 왔다갔다하며 음료수를 따른 컵을 정부측에도 무정부주의자측에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보다 더 기묘한 광경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거야말로 다른 나라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빠리 폭동의 특성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즉 빠리의 위대성과 쾌활성이 동시에 필요하다. 볼떼르의 도시이기도 하고 나뽈레옹의 도시이기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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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게 관계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은 본의가 아니나, 이 책의 작자는 빠리를 떠난지 꽤 여러 해 되었다. 그리고 작자가 떠난 뒤 빠리는 많이 변했다. 작자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새로운 도시가 생겨난 셈이다. 그러나 작자가 빠리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다. 빠리는 마음의 고향이다. 다만 여러모로 파괴되고 다시 재건된 결과, 작자의 젊은 시절의 빠리는, 작자가 자신의 기억 속에 귀중하게 간직해 둔 빠리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미 옛날의 빠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빠리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말하게 되는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작자가 ‘어떠어떠한 거리에 이러이러한 집이 있다’라고 하여 독자를 안내해 가는 곳에, 지금은 이미 집도 거리도 없을는지 모른다. -5편 1장 첫머리
망명생활이 십여년째에 접어들고 빠리는 오스망 남작의 도시계획에 의해 많이 변했다는 소식을 듣는 위고의 심정이 이러했겠지요. 이어서 위고는 그리운 조국의 모습을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