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사놓고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영화소식에 뮤지컬 음악 다시 듣다가 이것도 이제사 봤습니다.
이번에 찾아봤는데 뮤지컬은 공식 공연실황영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오페라보다는 접하기 쉽고 대중적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보고 나긴 했는데, 전 10주년 공연이 더 좋았어요.
오리 새끼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ㅂ- 10주년 공연팀은 꽤 오래 공연을 같이 해 온 팀이어서 그런지 주고받는 노래나 연기 자체도 더 좋아보였거든요. 25주년 기념 공연은 어우러지는 느낌은 훨씬 덜 하더군요.
화면은 전체적으로 10주년보다 훨씬 화려합니다. 일단 화질 차이도 많이 나고, 뒤에 보여지는 영상이나 오르락 내리락하며 공연에 긴장감을 주는 바리케이트 구조물 모양의 근사한 조명이나 거의 서서 노래만 하던 10주년 콘서트에 비해 연기도 많이 보여주고, 옷도 많이 갈아입습니다. 앙졸라는 세번이나 갈아입더군요. 10주년 영상 보고는 아 쟤는 단벌이고나 했는데요.
17개국의 장발장이 등장해서 번갈아 노래하던 10주년 공연 마무리도 멋졌지만 런던 오리지날 캐스트가 등장하는 25주년 공연 마무리도 멋지구요.
그러고 전체적으로 젊어진 것 같아요. 노래도 약간 빠르지 않나 싶고, 진행도 빠르고 출연진도 훨씬 젊어졌습니다. 10주년때 비하면 확연히 나이든 티가 나는 잘생긴 지휘자도 다시 등장했습니다.
근데 결정적으로 장발장이 좀 밋밋했어요ㅜ 알피 보라는 테너가수인데 노래는 참 잘하는데 노래를 참 잘 하는데 노래만 참 잘 하는 기분.
Who am I에서도 크게 고뇌하는 것 같지 않고 The confrontation에서도 별로 자베르와 대결하는 것 같지 않고 Bring him home에서도 아니 아저씨도 젊잖아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베르는 좋았어요. 여전히 필립 콰스트의 자베르가 제일 좋기는 합니다만^^;; 필립 콰스트의 냉혹하면서도 좀 표독스러운 목소리는 자베르 역을 하기 위해 타고난 것 같아요.
놈 루이스의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도 자베르에 어울리기는 하지만, 풍채가 근사하셔서 목소리를 좀 온화하게 내면 디뉴의 대주교나 심지어 장발장을 해도 좋을 것 같던데요.
10주년 공연때 에뽀닌느로 등장했던 레아 살롱가가 팡틴으로 나오더군요. 하지만 여전히 팡틴 역으로는 10주년 때의 Ruthie Henshall가 더 좋아요.
에뽀닌느도 사랑스럽고 가련하기는 했지만 역시 10주년때의 레아 살롱가가 더 마음에 드네요. 근데 사실 더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마지막에 노래했던, 오리지널 캐스트의 프랜시스 라펠이었어요. 으 정말 좋더라구요.
이번 공연의 꼬제뜨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레 미제라블 뮤지컬에서 꼬제뜨는 누가 하던지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이 귀엽고 도도한 아가씨가 생글생글 웃으며 나와서 노래하는데 정말 잘방장이 곱게 키운 딸 생각이 나서 흑흑 그래 네가 꼬제뜨구나 하면서 마음에 들어버렸습니다. 전 원작의 꼬제뜨도 예뻐했어요. 마리우스를 가리켜 꼬제뜨의 주인이라고 하는 장발장의 언급처럼 그 시절 갓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려운 일이었을테고, 꼬제뜨는 사실 한창 열애중일때 장발장이 영국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는 말 한 마디 못하던 성격이었으니까요. 사실 이건 다 변명이고 장발장이 목숨처럼 이뻐했으니까…ㅜㅜ 꼬제뜨 행복해야 해…ㅜㅜ 마리우스 우리 꼬제뜨 울리기만 해봐.
근데 이 공연의 마리우스는 꼬제뜨에게 잡혀 살게 생겼더군요(…) 공연 영상 보기 전에도 이런저런 후기에서 닉 조나스때문에 공연 망했어ㅜㅜ 이런 얘기를 몇번이나 봐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닉 조나스(…) 꼬제뜨와 에뽀닌느에 대해 연하남(…) 앙졸라 옆에 서면 삼촌과 조카(…) 이런 얘기들을 들었는데 정말 그런 말이 나올 만 하더라구요(…) 꼬제뜨와 에뽀닌느가 얘를 왜 좋아하는지 곰곰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마리우스가 하두 어리버리해 보이니까 앙졸라가 후배 연애도 못하게 하는 못된 선배로 보이더라구요. 노래가 어찌나 기죽은 소리로 들리는지 Empty chairs empty tables는 언제 불렀는지도 모르게 넘어갔더랬습니다ㅜㅜ 좋아하는 노래인데 말입니다. One day more 부를 때도 마리우스 파트가 쳐지니까 노래가 이빠진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빠진 One day more…ㅠㅠ 뭐 열심히 노래하긴 하더군요. 당연한 소리인가;;
앙졸라를 맡은 라민 카림루는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 보고 헉 금발이 아니야OTL 하고 좌절했고, 제 이상형의 앙졸라보다는 성격이 급한 것 같습니다만 정말 노래 잘 하더라구요. 10주년 음반의 마이클 맥과이어는 저음은 매력적인데 비해 고음은 답답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거든요. 그리고 어딘가 후배들 꼬셔서 집회 데리고 가는 운동권 선배 느낌이 들더군요ㅎㅎㅎㅎ 마리우스에게 늦었다고 하는데 야단치는 것 같고ㅎㅎ 앙졸라 앞의 마리우스는 눈치보는 후배같고ㅎㅎ 하나씩 밀당해주고 Drink with me 노래할때 씩 웃으며 바라보는데 정말 후배들 바라보는 선배 느낌이ㅎㅎㅎㅎ
마이클 맥과이어의 앙졸라는 정말 부관 거느린 상관같았거든요. 그나저나 이번에 찾아보고 알았는데 마이클 맥과이어가 10주년 기념 공연을 할 때 마흔살이었답니다. 그 얼굴로 마흔살…
이 공연 이후 알피 보가 한동안 장발장을 하다가 라민 카림루도 한동안 장발장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출연진 나이가 점점 어려지나 봐요. 25주년 공연을 보고 있으면 아 그렇구나 중반부의 주인공은 앙졸라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제 사심가득한 마음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 원래 극이 그렇게 짜여진 건지 라민 앙졸라가 쓸데없이 너무 잘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ㅋ
이 이후로 이 사람 어쩐지 마음에 든다며 이리저리 유튜브를 헤매다 앨범을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나는 왜 이리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인가(…)
그랑떼르는 10주년 공연에서 노래했던 Anthony Crivello의 탁하고 애조띤 음색이 좋았는데, 여기에서 노래한 하들리 프레이저는 너무 잘 생기고 너무 매끈하게 노래를 잘 해서 마음에 덜 들었어요. 잘 생기고 노래 잘 한다고 마음에 안 들다니 불쌍한 그랑떼르ㅎㅎ Anthony Crivello의 앙졸라 앞에서 한 박자쯤 주눅든 것 같은 연기도 참 마음에 들었는데, 하들리 프레이저의 그랑떼르는 그랑떼르보다는 꾸르페락이 저렇게 지내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그랑떼르 얘기를 하다보니 앙졸라와 그랑떼르가 너무 친한 것도 좀 마음에 걸리는데, 나올 때도 그랑떼르랑 얘기하며 나오다가 들어갈 때도 그랑떼르와 얘기하며 들어가다니 저 자리는 꽁브페르 자리가 맞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니 뭐 그렇게 따지자면 바리케이트 안에 그랑떼르가 있는 것부터 문제이긴 하지만 Drink with me 들었을 때 그래 저 노래를 저렇게 해 줄 사람은 그랑떼르밖에 없지 하고 관대하게 넘어가 버렸거든요. 사실 바리케이트 안에서는 앙졸라와 그랑떼르 외의 사람들은 노래를 바꿔도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엇비슷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랑떼르가 ‘분위기를 쾌활하게 해 주는 앙졸라의 단짝친구’ 정도로 되면 그건 참 곤란하지 않나요. 나만 곤란한가……..
참 인기가 많은 파트이기는 한데 떼나르디에 부부 파트는 점점 그냥 그렇네요. 뭐 여전히 10주년의 떼나르디에 부부가 좋긴 해요. 25주년 공연의 떼나르디에는 좀 무섭게 생겼…() 25주년 공연에도 모습을 보인 떼나르디에 부인이 반갑긴 했습니다.
마무리할 때 이제 머리가 새하얗게 센 콤 윌킨스가 등장해서 노래하기 전에 미소띤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는데 정말 ‘병아리같이 새하얀 노인’이 되었네요. 장발장들이 Bring him home을 부르고, 오리지널 캐스트가 One day more를 부르는데 역시나 멋졌습니다. 앙졸라 파트만 오리지널 캐스트를 대신해서 라민이 불렀는데, 오리지널 캐스트였던 이름 잊어버린 분이 이제 나이가 드셔서 그랬다는 후문을 어디서 들었습니다. 마이클 볼이 맡은 마리우스 파트가 앙졸라 파트와 주고받는 수준이 맞으니까 역시 노래가 멋지더라구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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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고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공연 마무리를 다시 봤는데, 역시 뮤지컬 계라ㅎㅎ 25주년 팬텀은 라민 카림루가 맡았고, 하들리 프레이저가 라울, 역대 팬텀으로 콤 윌킨스와 컴플리트 에디션에서 앙졸라로 노래했던 앤소리 월로우, 역시 장발장을 오래 맡았던 존 오웬 존스가 나오더군요.
취향이겠습니다만 전 오페라의 유령은 좀 지루하더군요. 노래들도 익숙하고 아름답고 무대는 화려한데, 재미가 없어요()
넘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감상한 후의 제 생각과 행동패턴과 어찌나 똑같으신지… 한참 웃었더랬습니다. 라민…아들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다니…그래도 알피보의 범접할 수 없는 목소리와 슬픈 듯한 눈 표정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