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를 넘어서/로버트 하인라인

알고 있는지. 난 우주복을 갖게 됐다. 어떻게 가지게 되었냐면 다음과 같다.
“아빠, 전 달에 가고 싶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가려무나.”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책 속에 코를 박았다. 제롬 K.제롬의 [한 배를 탄 세 남자]라는 소설이었는데, 아빠는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내가 다시 말했다. “아빠, 제발요! 전 심각해요.”
이번엔 읽고 있던 페이지에 손가락을 끼운 채 아빠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방금 좋다고 말했잖니. 가려무나.”
“네… 하지만, 어떻게요?”
“응?” 아빠는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글쎄, 그건 네 문제가 아니냐, 클리포드.”

이 아버지 캐릭터 참 매력적이지 않습니까ㅎㅎ

“글쎄요. 전 고등학교를 졸업할 거에요. 그럼 대학에 가는 거죠.”
“그야 그렇겠지. 주립대학 혹은 주립 보통 대학, 혹은 주립 시시한 대학으로. 하지만 킵, 넌 그 대학들이 신입생 중 40퍼센트를 학점미달로 탈락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미국 대학이 어떤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미국에서 대학가기는 쉽지만 졸업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를 선생님들마다 했던 것 같다.

“그게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은 아니란다, 킵.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편법이 환영받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명언 또 하나.

(우주복)설명서를 다 읽을 즈음에는, 나는 우주복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떻게 사람이 아무데서고 살아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이 책은 1958년에 나왔는데, 아직 우주복이 안 나왔을 때라고 하죠. 꼼꼼하게 뜯어가며 묘사한 듯한 우주복 얘기를 생각하면 역시 대단합니다.

나는 대학의 첫 학기를 버텨내려면 아무래도 오스카를 팔아야 할 거라고 우울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두번째 학기는 또 무엇으로 버틴단 말인가? 모든 미국 소년들의 우상인 조 밸리언트는 15센트와 착한 마음만으로 대학 캠퍼스에 나타나, 제일 마지막 장에서는 몸이 부서져라 노력한 결과 은행 잔고를 잔뜩 가지는 것으로 끝난다.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킵은 1달러 67센트를 갖고 그 일을 해냅니다.

‘얽힌 명주실을 풀어주는 잠이여, 피곤에 지친 조물주의 달콤한 회복제인 그대 온화한 수면이여. 모든 인간의 사고를 덮어주는 담요인 잠을 발명한 인간은 축복받으라’ -80페이지
아, 천진난만한 잠, 고민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잠, 그날 그날의 생명의 죽음인 잠, 노고를 씻어주는 잠, 자연이 베푸는 제2의 생명, 이 세상에 그 어떤 향연도 이만한 자양분을 제공해 주지는 못할 것을. -집의 책

세익스피어를 상당히 많이 인용합니다.

‘마더 씽’은, 그녀가 ‘마더 씽’이기 때문에 ‘마더 씽’이었다. 그녀에게는 행복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었다. 만일 당신이 무릎이 까져서 집으로 달려온다면, 그녀는 상처 부위에 키스를 하고, 아픈 곳을 닦아주고, 소독약도 발라줄 것이다. 그려먼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어떤 간호사들에게도 어떤 선생님들에게도 그런 재능은 가끔 있다… 그리고 슬프게도, 어떤 어머니들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
그러나 ‘마더 씽’은 그런 특질이 너무나 강해서, 심지어 나는 곤충대가리에 대한 걱정마저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작고 어리고 부산스럽고 무력한 모든 존재를 사랑해요. 그래서 ‘마더 씽’이라고 불리는 거에요.” 나는 내 말이 그에게 어떻게 들릴지 깨닫지 못했다. 레이스필드 교수는 다행히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뒤에 가면 성별이 아니라 그런 특질에 의해 역할을 맡는 거라고 부연하긴 하지만, 하인라인의 세계가 박식하고 이해력깊은 아버지와 자애롭고 보듬어 주는 어머니를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합니다. 이 책도 천재 소녀와 기술자 소년이라는 고전적인 조합이기도 하구요.
스타쉽 트루퍼스에서였나 외계인을 ‘갈비씨(…)’라고 표현한 걸 봤는데 이번엔 곤충대가리라니, 이쯤되면 원래 단어가 뭐였는지 궁금하긴 합니다ㅎ 이름을 알기 전의 두 명의 인간 남자는 뚱뚱이와 홀쭉이라고도 나와요ㅎㅎ

살아 있는 비겁자가 되기보다는 죽은 영웅이 더 낫기 때문이다. 죽음은 지저분하고 불편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겁자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리고 비겁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죽을 때까지 변명해야 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거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인자와 강간범과 유아납치범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면, 그들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틀렸다.

모험을 받아들이는 소년.

“오빠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할걸? 조크의 우주복 안에 있더라고.”
“그래, 난 절대로 알아내지 못했을 거야. ‘편지함 속의 편지’로구나”

하인라인식 유머. 이쯤되면 조크의 이름도 궁금해집니다…ㅎ

뼈를 얼어붙게 하는 고도의 지능적인 사악함이 모든 단어에 이빨 자국처럼 선명하게 배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악의는 모든 단어가 주먹을 내려치듯 증오의 크레센도를 달렸다.

간결하게도 쓰지만 이런 문장은 참 화려하죠.

따뜻한 태양빛을 받으며 나른하게 돌고 있는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푸른 지구…
…더 이상 태양은 없다.
별도.
홀로 남은 달은 한순간 흔들리겠지만, 계속 태양 주위를 돌며 인간의 희망에 대한 비석으로 남을 것이다. 달 기지와 달 시티, 톰보프 정거장에 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몇 주일 혹은 몇 달은 견딜 것이다. 그런 다음 그들도 사라져 갈 것이다. 만일 질식이 아니라면, 슬픔과 외로움 때문에.

지구의 푸른 달 때도 그랬지만, 우주에 나가본 적도 없으면서 어쩌면 이리 그립게 지구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음 근데 지구가 한순간 없어지면 달은 한순간 흔들리고 마는 게 아니지 않나요? 튕겨져 나가지 않으려나-_-a 그리고보니 닥터후 시즌4에서도 달만 냅두고 지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있죠;

문법도 엉망이고, 나쁜 언어에다, 거친 태도까지 말이 아니었지만 그 거칠고 늙은 로마 병사는 인간으로서의 용기와 위엄이 있었다. 그는 아마 늙은 악당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인류의 악당이었다. …우리는 노력할 것이다. ‘노력하다 죽는 것’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모습이 아니던가!

드디어 악담임을 긍정하는 소년ㅋㅋ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소설이라 하겠습니다(…)
달여행이 불가능하지는 않게 된 어느 때, 달에 가고 싶어하는 소년 킵은 우여곡절을 거쳐 중고 우주복을 갖게 됩니다. 중고지만 어쨌든 진짜 우주복, 킵은 열심히 우주복을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킵의 이 노고는 엄청 빛을 발하게 되죠. 이 우주복 이름도 있어요, 오스카.
하인라인의 소설을 읽다가 최첨단의 기술과 어마어마한 자본이 집중된 우주정거장 사진을 보면, 저기에서도 개개인이 납땜하고 회로읽는 것이 중요해질까 궁금해요. 킵이 오스카에 단 무선 통신 기기야 라디오키트랑은 비교가 안되는 것이긴 하겠습니다만ㅎ
리처드 바크나 레이먼드 카버나, 무척 미국적인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 소설은 읽어도 어디가 어떻게 미국적인지 좀처럼 알 수 없는 저지만(…) 하인라인은 참 미국적인 SF를 쓰는 작가에요.

This Post Has 2 Comments

  1. 캐스트너

    아버지가 읽는 책 !
    제롬 K. 제롬! (참, 얼마나 이름을 짓기 귀찮았으면 이름을 성과 똑같이 지었을까? 그러고 보니 영국 작가 중에 포드 매독스 포드도 있지요).
    예전에 저 미들네임 K가 무엇의 이니셜일까 궁금했는데 답은 클렙카(Klepka)였다는…
    는 정말 유머 소설의 걸작이죠. 제롬 K. 제롬은 코난 도일의 절친이었구요.ㅎㅎ

    정말 있는 책인가 했는데 실제로 있는 책이었군요ㅎㅎ
    재밌다고 하시니 이것도 함 읽어봐야겠어요+_+

  2. 캐스트너

    ‘보트 위의 세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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