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녀석을 사랑합니다. 더 좋은 말 두 필을 내주긴 했지만 저 망나니는 제 호적수고, 저는 저 녀석을 그 말들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캐드펠이 버링가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이보다 저 적절히 표현말 말은 없었다. 이 망나니는 내 호적수고, 녀석을 다른 상대와 바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캐드펠은 그 곁을 떠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앉은뱅이 사내가 떠려버린 불안과 우울의 짐을 대신 짊어진 채로. 캐드펠은 생각에 잠겼다. 타인을 구원한다는 것은 항시 자신이 그 짐을 대신 짊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언제나 현상만을 논하지. 진실을 명확히 꿰뚫어볼 수 있는 이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하는 생각은 치워버리시오. 당신은 합법적으로 명예롭게 얻은 것들을 갖고 있소.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즐겨요.”
추리물에서 콤비네이션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어요. 무지하고 완고하고 순진한 중세인들 사이에 홀로 떨어진 논리적 회의주의자 캐드펠 수사가 20권을 도대체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걱정되던 1권과는 달리, 캐드펠 수사는 조금은 중세인다워졌습니다ㅋ
저 세번째 문단을 보세요. 짐짓 저런 말도 해 주기도 하고, 사랑하는 제자들도 생기고, 아끼는 젊은이가 결투를 하게 될 즈음에는 하느님의 가호를 빌기도 합니다.
주위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어요. 로버트 부원장과 제롬 수사는 저멀리 밀려났고, 전쟁이 시루즈베리 수도원 주변으로 닥쳐와 왕과 가신들이 등장하고, 무엇보다 캐드펠 수사가 사랑하는 호적수로 꼽는 버링가도 등장합니다. 캐드펠 수사가 혼자 속으로 중얼중얼 사건을 따지기보다는 ‘말이 통하는’ 때로는 캐드펠 수사만큼이나 앞질러 생각하는 사람들과 추리를 주고받는 것이 1권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둘이 배포를 어느정도 내보이면서 하는 야간 산책이 그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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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배경이 헨리1세 사후 마틸다와 스테판 드 블롸 사이의 전쟁, 그중 1138년이고 아델리아 시리즈에 나오는 왕이 헨리2세, 그것도 토머스 베케트가 죽은 이후니까 두 시리즈 사이에는 30여년 정도 시간차가 있는 것 같아요. 흥미진진한 시대였나 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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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두번째 인용문단의 세번째 문장같은 건 잘라내 버리면 좋지 않겠어요(…) 은근히 이런 게 눈에 많이 뜨이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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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숨겨진 주검은 두 구였군요.
저도 얼마전에 캐드펠 시리즈 한 권 읽었어요. 아쉽게도 도서관에 시리즈 3권부터 있어서 휴 버링가가 등장하는 2권은 못 읽고 3권 을 읽었는데 휴 버링가 씨는 조력자로 잠깐 나오네요.
3권은 빨려들지도 않지만 아주 재미없지도 않고 so-so 였네요. 캐드펠 수도사나 휴 버링가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좀 부족한 작품이었던 거 같네요. 그래서 다시 한번 기회를 더 주기로 하고 4권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1,2권에서 배경 설명을 다 해놓은 탓인지 뭐랄까 저는 생각보다 중세, 수도원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살아나질 않아 좀 아쉬웠네요. 디테일한 배경 설명에 본령인 추리가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하는 근래의 몇몇 역사추리물처럼 될 필요는 없겠지만 역사추리물 특유의 시대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묘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를 조금만 더 신경써서 묘사해주면 좋지 않을까?
캐드펠 수사는 제가 생각하는 중세인보다는 확실히 현대적이고 세속적이더군요. 다른 작품에서는 좀 더 중세인다운 인상을 풍기면 좋겠어요.
3권 ‘수도사의 두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