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인상적이었던 대사

오과국의 등갑군은 여기서 한 명도 남지 못하고 전부 다 타죽었다. 그 수는 삼만을 넘어서, 불이 꺼진 후에 그 광경을 반사곡 위에서 보니 마치 불로 전멸시킨 해충떼의 시체와 같았다.
공명은 다음날 그 반사국에 서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촉제국의 사직을 위해서는 다소간 공은 있을지라도 나는 반드시 수명을 재촉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큰 살륙을 했으니]
하고, 깊이 탄식했다.
그 공명의 탄식을 듣는 자는 모두 울었다. 다만 조운 혼자만은 그렇지 않다고 도리어 공명의 소승관이라고 비난했다.
[생생유상生生流相 명명전상命命轉相. 형상을 이루었다가 멸망하고, 멸망했다가는 다시 형상을 맺는 법. 모두가 수만 년 변하지 않는 대생명의 진상이 아닙니까. 황하수 한 번 범람하면 몇 만명의 인명은 사라지지만 창락하게 백곡의 이삭은 여물어서 인종은 또 다시 증식하는 법. 승상의 대업에는 왕화王化의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만민백만을 멸망시켜도 이 만토蠻土에 천재의 덕을 심어 남겨 둔다면 이 정도의 살업은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오… 좋은 말을 해 주었다]
공명은 조운의 손을 잡아서 자기 이마에 대고 또다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공명이 남만을 정벌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공명은 남만의 왕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줘서
맹획은 공명에게 감복하여 촉에 충성을 다하게 되었다고 하죠.
오과국의 등갑군이 등장한 이 전투는 그 일곱 번의 전투 중에 한번으로, 등갑군은 말린 등나무로 만든 갑옷을 입어
살도 칼도 듣지 않고 등갑군은 전투를 끝내고 퇴근할 때에는 등갑을 배삼아 강을 건너갔다고 합니다.
공명은 등갑이 무엇인지 알아본 후에 화공으로 삼만 군사를 살육하죠.

그리고는 탄식하는 말이 내 수명이 짧아지겠구나.
탄식하는 공명을 위로하는 조운의 말은 왕화가 잘 되어 있다면 인종은 또다시 증식하는 법, 고로 왕화의 사명을 위해서는
삼만명을 살육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조운과 공명은 제가 삼국지에서 제일 좋아하는 인물 둘이기 때문에 더 인상적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라서 명쾌한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사실 지배자라는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중국 영화를 보고 있으면 중국 지배자들은 이런 성향이 더 강한 것은 아닐까 하는 편견이 듭니다.
마오가 지지를 받은 것은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인식을 민중들에게 심어줘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일요일에 적인걸을 봤어요.
넘 오랫만에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니 느낌이 막 새롭구요;;
영화는 재밌게 봤습니다. 이렇게 마구 열심히 만든 무협영화가 얼마만인지… =ㅂ=
요즘 중국 사극들의 우리 궁궐 이렇게 크고 멋졌다~! 도 거슬리다면 거슬리고 귀엽다면 귀엽게 봐 줄 수 있었어요.ㅋ

This Post Has 3 Comments

  1. 제갈량민

    저 역시 닉넴과 홈 이름도 참 덕덕스러울 정도로 제갈공명을 좋아합니다. 자룡과 운장도 너무 좋구요. 국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장원 전투에서 목각 인형을 만들게 하고 천운을 끝낸 공명이 어떤 기분이었을 지, 저 장면을 보니 새삼 마음이 찡하군요.

    네, 저도 공명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결정적으로 공명과 나 사이에 깊고 큰 강이 있구나 싶을 때가 있더라구요. 200년 무렵에 살던 사람과 제 사이에 강이 안 흐를 수가 없는데 소녀처럼 소심해지는 건 역시 좋아하기 때문이겠지요.

  2. 나르

    저도 조운을 좋아했어서 처음 저 장면을 봤을 때는 역시 조운은 늠름히 공명 님을 다독여주는군, 이라며 흐뭇했다가, 다음에 다시 봤을 때는 저런 사고를 지닌 조운이 좀 간담 서늘해졌던 것 같아요. … 지금은 자기 손으로 직접 사람을 베야하는 무장으로서 필요했던 관점이란 생각이 들어, 그 때처럼 불편하진 않네요ㅎㅎ
    중국 사극들은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카인 님 이야기를 보니 다음부턴 왠지 저도 귀엽게 볼 것 같아요ㅋ

    최근 중국 대작 사극들… 중화주의라고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 쫌 귀엽더라구요ㅎ

  3. 캐스트너

    그런데 그런 마오가 제갈량이나 조운은 우스워 보일 정도로 훨씬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하면 아이러니라는 말로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의 경제정책의 잘못과 이데올로기적 경직성 때문에 대기근과 문화 대혁명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만 단위가 아니라, 천만 단위와 백만 단위를 헤아리니까요. 물론 이 경우, 오로지 마오 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렇게 따지면 삼국 간의 피비린내 나는 쟁투나 남만정벌이나 역시 제갈량 혼자의 책임은 아니죠.

    저는 커서는 삼국지를 다시 읽지 않아서 – 중학교 때 범우판으로 한 번, 고등학교 때 민음사 이문열 판으로 한 번 읽었습니다 – 주요 줄거리만 기억날 뿐 나머지는 흐릿한데 공명이 종종 울었다는 것은 기억이 나는군요(어린 나이에 읽을 때 다 큰 어른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나 봅니다).

    아,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울면서 한다는 말이 생각할수록 정말! – 아니, 희생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아니고 자기가 악업을 쌓아서 수명 짧아지게 생겼다고 울다니…! 한 대 때려주고 싶군요!

    하하, 뭐, 위엣말은 반 농담이고요, 약간 더 정색하고 이야기하자면, 글쎄…공명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왕도사상적 세계관에 따라 머릿속으로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필요한 희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에는 천성이 모질지 못한 사람, 그래서 죽은 사람들한테 죄스럽고, 자기가 이렇게 살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슬프고…이 모든 게 서러워 저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나오던 그런 사람이었나 봅니다. 인간적이네요.

    이거 쓸 때는 마오에 대해서 대장정정도까지밖에 모르긴 했는데, 대장정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지지를 얻은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비슷한 인상을 갖고 있어요.

    공명 뿐인가요. 유비도 울고 조조도 울고 조운도 울고 다들 어찌나 잘 울던지 생각해보면 문학적인 수사인지 중국 사람들이 잘 우는지 저 시절 사람들이 잘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삼국지 인물들이 울기도 잘 울고 웃기도 잘 웃고 희노애락을 거침없이 잘 표현하기는 하더군요. 다들 엄청 인간적이에요. 그러다 갑자기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온다거나 하룻밤새 화살 십만개를 갖고 온다거나 이런 능력을 수시로 보이기도 하지만ㅎㅎ 그래도 유비나 조조는 우는 상황에서 나 때문에 백성들이나 부하들이 고생한다는 말이라도 하는데 제갈량의 저 말이나 조운의 위로하는 말은 농담 아니고 한 대 때려주고 싶습니다. 하긴 이긴 상황에서 운 사례는 이 경우밖에 없었던 것 같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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