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벨의 죽음 / 브랜드

동서 미스터리 북스에는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소설이 많아서 그냥 제목보고 내키는 대로 고르는데요. 이 책은 표지가 정말 무서운 그림이었습니다;; 전철에서 그냥 읽기는 살짝 민망할 정도라 표지를 싸서 다닐까 했는데 며칠만에 다 읽어버려서 그냥 안 쌌습니다;

제제벨은 아니고 이세벨이라는 아가씨가 소설 첫머리에서 죽습니다. 근데 아무도 애도해주지 않더군요. 이세벨에게 푹 빠져있던 남자는 허둥지둥 자기 부인에게 돌아가죠. 하긴 근데 경황도 없는 것이, 이세벨이 죽을 때 죽임을 당할 거라는 협박장을 받은 상태였고, 같은 협박장을 받은 사람이 둘 더 있었거든요.
제제벨의 죽음에서 처음 죽는 것은 이세벨이 아닙니다. 소설이 막 시작되자마자, 젊은 군인 하나가 자기 애인이 바람피우는 것을 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몰고 나가서 자살을 해요. 그리고 군인의 애인이 바람을 피우도록 부추긴 것은 이세벨이었죠.

전쟁이 끝나고 군인들을 위한 바자회에서 상영될 탑과 말과 기사와 공주가 나오는 작은 공연이 준비됩니다. 공주 역은 이세벨이 맡고 기사 역을 할 사람들도 이세벨이 전쟁 중에 실업자 신세가 된 배우들을 모아서 진행을 해요. 조금 우왕좌왕하며 공연 준비를 하면서, 어쨌든 공연날이 되어 탑 아래 말을 탄 기사들이 도열한 가운데 탑 꼭대기에 대본대로 이세벨이 나타나고, 하지만 갑자기 추락해서 사망합니다. 협박편지 때문에 현장에 와 있던 주인공 탐정은 이세벨이 헛디뎌서 떨어지거나 한 것이 아니라 떠밀려서 추락한 것이라는 증거들을 찾아내고요. 수백 명의 관중이 바라보는 공연 한 가운데서 살인이 일어난 거죠. 그리고 이세벨이 추락해서 말들이 이리저리 뛰고 다들 정신이 없던 가운데, 그래도 공연장밖으로 누가 빠져나갈 수는 없었을 텐데 기사역 중의 하나를 맡았던, 그리고 몇년전 군인의 애인을 꼬셔냈던 남자 배우 하나가 없어진 것이 밝혀집니다. 이 배우는 다음 다음날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죠.

주인공 탐정은 귀여웠어요. 약간 포와로 느낌이 난다고 할까요. 살짝 잘난 체 하고, 알아주면 좋아하고, 좀 땅딸막하고 약간 통통하기도 한 중년은 지난 경관. 사건이 다 밝혀진 후에야 알 수 있는 배려를 하기도 하죠.

부부탐정에서였나 간호사 옷을 입으면 다 간호사로 보인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비슷한 트릭이 여기에서도 쓰입니다. 역시나 대담한 트릭이에요. 게다가 이런 범행 무대를 마련하다니 범인은 정말 부지런하고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소설에서는 이세벨이 애도받을 필요 없는 악녀로 나오는데, 짧은 등장에서도 이기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애인이 있는 친구에게 자기가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사람과 사귀라고 부추긴 것이 죽어 마땅한 죄는 아니지 않나요. (솔직히 아무리 순진해서 이용당한 거라고 해도 바람을 피운 당사자가 더 나쁜 것 아닌가요;;)범인이 최후에 밝히긴 하지만 그 집안은 참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기는 하는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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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검색하다 찾은 건데, 전 그냥 모르는 통화인가부다 하고 넘어간 ‘폰드’가 파운드의 오역이라더군요. 이 오역을 지적한 분은 수레국화같은 머리카락이라는 표현은 처음 본다고 역시 분개하셨는데, 제 기억에는 어쩐지 수레국화같은 눈동자라고 치환되어 남아 있어요. 참 편리한 기억력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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