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추억 얘기

87년부터 정치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때는 초딩이었던 고로 김대중은 좋은 사람 전두환은 나쁜 놈 정도 인식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기억이 시작하는 것은 1992년 대선, 밤새 억울해하며 개표 방송을 봤고 다음날 떨리는 목소리로 정계 은퇴 발표를 하는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그 영상은 많이도 방송되었기에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정계 은퇴를 발표하고는 수필집을 한 권 내셨죠. 독후감을 보내주면 저자 강연회에 갈 수 있다길래 우편으로 보내고(피시통신도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네요) 쫄래쫄래 강연회에 갔던 생각이 납니다. 청소년 대상 강연회라서 거의 또래 고등학생들이었을 청중들은 질문 시간에 어찌나 똘똘한 질문들을 하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던지 기가 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 많이 나왔던 질문이 정계에 다시 돌아올 것이냐는 질문이었는데 단호하게 몇 번이나 은퇴는 번복하지 않겠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영국에서 한참 공부를 하시고… 정계에 되돌아오셨죠. 그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음, 그때는 김대중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했지요.

92년 대선 다음 날, 내가 한번도 지지표도 던지지 못했는데 선생님은 이제 정계은퇴를 하는구나 하며 슬퍼했는데 97년 대선에서 저는 다른 사람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표소에서는 잠시 92년의 그날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외쳤던 97년 저의 후보에게 투표를 했고요. 그리고보니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나이많은 남자친구는 선거운동은 함께 했으면서 정작 투표는 선생님에게 해서, 그 일로 싸웠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97년 대선 다음날, 한겨레는 1면에 보라색 머릿수건을 쓴 어머니들에게 둘러싸인 김대중 당선자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동지였던 민가협 어머니들이었고, 새벽부터 기다리시다 그날 아침에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대선에서 지지하고 응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마음으로 지지했던 정치인, 다른 정치인의 선거운동을 하면서 검토했던 김대중 후보의 정책들은 알차고 깊이가 있었고,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비판은 면할 수 없었지만 당시 구호였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단어에 잘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전 철들고 맞았던 97년 대선부터 지금까지, 부끄럽게도 저의 진영의 후보까지 비롯해서 그 당시 김대중 후보의 정책만큼 꼼꼼하고 내실있는 대선 정책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날 그 사진을 보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국가보안법만큼은 폐지해주겠고나 설레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는 왜 적극적이지 않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국보폐지의 역풍을 생각하면 천천히 사문화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의 당선 이후는 지난 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때 제가 쓰다가 지웠던 글의 궤적과 비슷했습니다. 선생님이 당선되었고, 취임식을 올렸고, 5월에는 후배가 구속되었고,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다치고 싸웠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부자되세요가 새해 덕담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생기고 과거사위원회가 생기고 인권위원회가 생기고 노사정위원회가 생기고 그 뒤로 참 많은 얘기가 있었고 우리 대통령은 미국에서 홀대를 받았습니다. 일본 언론에서 표현했다던 대로 비판과 칭찬, 많은 세평이 있었습니다.
입원 소식에 이젠 어려울 지 모르겠다고도 생각했지만 늘 그러셨듯이 기적적으로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어요. 감히 우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뭐라고 정리하기가 어렵네요.
‘힘든 일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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