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료원에서 토요일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극장을 합니다. 첫번째로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상영해서 보러 다녀 왔어요. 상영시간에 늦어서, 안 들여주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조용히 문을 열어주셔서 폐를 끼치며 늦게 들어가서 보고 왔습니다.
대강 이런 줄거리에요. 이스탄불에서 칼레로 가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도중에 폭설로 꼼짝 못하고 있을 때 승객 중의 한 사람이 살해당합니다. 포와로는 그 열차에 ‘우연히’ 타고 있었고요. 살해당한 사람은 유괴살인사건을 몇 번이나 저질렀던 악당입니다. 열차에 남은 열네 명의 승객을 취조하던 포와로는 승객중에 살해당한 사람이 저질렀던 유괴살인사건 중에서도 특히 끔찍했던 사건,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유괴, 살해당하고 그 충격으로 그 애의 어머니는 사산후 사망하고 그 남편은 자살했으며 누명을 썼던 하녀 한 명도 자살한 암스트롱 유괴사건때의 암스트롱 집안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유달리 많은 것을 눈치챕니다.
영화를 보러 가면서 기대했던 것을 허바드 부인이었어요. 제가 포와로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포와로가 사건 해설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일은 드문 일이었거든요. 게다가 포와로와, 사건을 책임지고 있던 다른 사람까지 설득하게 했던 그 부인과 그 장면을 영화가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허바드 부인의 역할은 축소되었습니다. 허바드 부인의 목소리로 사건을 설명했던 책과는 달리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사건을 보여주었거든요. 영화라서 택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겠지만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포와로도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어요. 저의 포와로는 더 몸집도 작고 귀엽고 살금살금한 사람이거든요. 취조하는 방식은 부드럽고요. 하지만 알버트 피니가 연기한 포와로는 정력넘치고 박력있더군요.
허바드 부인은 로렌 바콜이 연기했습니다. 이 배우는 스틸 사진으로만 몇 번 봤는데 굉장히 예쁘고 여우같이 생겨서 좋아하는 배우에요.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처음 보는 영화가 그 배우의 노년을 담고 있다니 조금 슬픈 일이지만; 범행에 이용된 칼을 들고 등장하는 장면이라든지는 멋졌습니다.
이외에도 잉그리드 버그만이나 숀 코네리가 등장하는 초호화 캐스팅이라는데 역시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복수를 마무리하고 가족들이 축배를 드는 장면은 담담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조금 어색했습니다. ‘죽어 마땅한’ 범인이지만 누군가의 죽음에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축배를 드는 장면이라 그랬나봐요. 이 가족들은 어떻게 살까요. 함께 복수를 완결했다는 사실이, 누군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이 가족들에게 더 단단한 결속력을 제공할지 회한과 어색함을 가져다줄지 잘 모르겠어요. 서양의 영화를 보다보면 죽음에 대한 입장이 조금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거든요.
이번 주 토요일에는 13인의 만찬을 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