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스포일러 매우 많습니다.
어디선가 여성의 심리를 잘 그려낸 영화라는 평을 들었는데… 그런데 사실, 김기덕의 영화나 알모도바르의 영화나 여성을 타자화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귀향의 여성들은 끝없이 헌신적이고도 현명하다. 비현실적일정도로. 어린 시절에는 가정성폭력을 모르던 엄마를 원망하지만 자신의 가정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는 현명하고 억척스럽게 해결하고 (그놈은 또)자애롭게 묻어준다. 집에 불을 질러서 딸을 성폭행하던 남편과 남편이 바람을 피운 이웃집 여자를 살해하지만 그 이웃집 여자의 딸이 불치병에 걸리자 유령처럼 나타나 보살펴준다. 이미 오랜 세월 아무와도 만나지 않고 병든 어머니의 병수발만을 해 왔으면서. 오랜 세월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돌아오자 이웃들에게는 러시아 이주자라고 둘러대고 새로운 공동체를 꾸린다. 한달간의 밤 수입을 요구하며 암매장을 도와주고, 싼값에 좋은 식료품들을 넘겨준다. 그 딸은 또 어떤 세월을 살아내고 어떤 ‘멋진’ 공동체를 꾸려갈까.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일들이, 여성보다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져왔던 것이 현실임을 생각하면 창녀로 타자화하는 것보다 성녀로 타자화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귀향에 남자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 인내와 헌신과 자애와 현명함의 세계에 알모도바르의 남자들은 끼어들기 힘들 테니까.
궁시렁거리긴 했지만 영화는 재밌었다. (;;)
+ 안토니아스 라인을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은데, 그때보다 더 궁시렁이 늘어난 건지, 남자 감독 영화라는 선입견때문인지.
알모도바르의 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 영화는 다들 좋게 평하시는데, 여성에 대한 관점은 어떨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무거운 엉덩이를 어떻게든 들어야(…)
앗, 태그 먹혔나봐요; 지워진 영화 제목은 ‘그녀에게’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