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ABC의 벗 1 역사적 존재가 될 뻔한 일단
그런데 이 회의주의자는 어떤 대상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사상도 아니고 교의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었다. 그건 한 인간, 다시 말해서 앙졸라였다. 그랑떼르는 앙졸라를 찬미하고 사랑하고 숭배하고 있었다. 이 무정부주의적인 회의주의자가 절대적인 정신을 지닌 사람만이 모인 이 단체 속에서 결부된 것은 누구에게였을가? 가장 절대적인 정신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떻게 앙졸라는 그를 진심으로 복종케 했을까? 사상의 힘으로였는가? 아니다, 성격의 힘으로였다. 이것은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회의하는 사람이 신념을 지닌 사람에게 결부되는 것은 그림에서의 보색의 법칙처럼 당연한 일이다. 자기에게 부족한 것은 우리를 끌어당긴다. 장님만큼 햇빛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난장이만큼 연대의 고수장을 동경하는 사람은 없다. 두꺼비의 눈은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 왜? 새가 나는 것을 보기위해서이다. 마음속에 회의가 기어다니는 그랑떼르는 앙졸라에게서 신념이 날개치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에게는 앙졸라가 필요했다. 자기 자신이 확실히 의식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앙졸라의 순결하고, 건전하고, 확고하고 정직하고, 엄하고, 솔직한 성질에 매혹당하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기와는 대조적인 사람을 찬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부드럽고 희미하고 산만하고 병적으로 기형적인 사상은 등뼈에 달라붙듯 앙졸라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정신적 척추는 앙졸라의 확고부동한 척추에 기대고 있었다. 앙졸라 가까이에 있으면 그랑떼르도 어엿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 외관상 모순된 것 같은 두 가지 요소로 되어 있었다. 빈정거리면서도 동시에 진지했다. 그는 냉담을 가장하면서도 실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신념 없이도 지낼 수 있으나 그의 마음은 우정없이는 견디지 못했다. 이것은 심한 모순이다. 왜냐하면 애정은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의 성질은 그런 것이었다. 세상에는 옷의 안감처럼 남의 이면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이를테면 뽈룩스, 빠트로클, 니쥬스, 유다미다스, 에페스티온, 페크메자 등이 그런 사람이다. 그들은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기댄다는 조건 아래서밖에 살 수 없다. 그들의 이름은 언제나 남의 이름 다음에 놓이고 이라는 접속사 뒤에밖에 쓰여지지 못한다. 그들의 큰 존재는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운명의 이면인 것이다. 그랑떼르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앙졸라의 등이었다.
그러한 친화력은 당초 알파벳의 글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알파벳의 순서로 보면 O와 P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독자들은 이것을 그대로 O와 P 또는 오레스트와 삘라드라고 발음해도 좋을 것이다.
그랑떼르는 앙졸라의 참다운 위성으로서 이 젊은이들의 그룹속에 살고 있었다. 그의 생활은 거기에 있었다. 그는 거기에 있지 않으면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따라갔다. 그의 기쁨은 술기운이 돈 눈으로 동료들의 모습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그가 기분 좋으면 그것으로 그를 너그럽게 보아 주는 것이었다.
신념가로서 앙졸라는 이 회의주의자를 멸시했고, 또 절제가로서도 이 주정뱅이를 멸시했다. 물론 다소 불쌍하게 여겨주기도 했지만 그것도 경멸하는 듯한 동정이었다. 그랑떼르는 자기의 우정이 조금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삘라드였다. 그는 항상 앙졸라에게 심한 구박을 받고, 냉혹하게 배척되고, 거절당하면서도 여전히 되돌아와서 앙졸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대리석 같은 놈이냐!」
위고가 앙졸라를 묘사한 첫 문단에서 벌써 저는 앙졸라에게 매혹당해 버렸습니다만은, 처음 레미제라블을 읽었을 때는 그랑떼르를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만, 아마도 그랑떼르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렇게 커서도 계속 좋아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랑떼르가 없었다면 더 외로왔을 앙졸라의 최후까지.
+ 뽈룩스, 빠트로클, 니쥬스, 유다미다스, 에페스티온, 페크메자, 오레스트, 삘라르가 누구인지 알려주실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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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스트와 삘라르는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 나오는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 이때 [오레스테이아]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읽었어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오레스테이아] 자체에는 필라데스는 아주 조금밖에 안 나온다. 라신의 [앙드로마크]에는 많이 나온다고 하지만 번역도 안 되어있을거야… 라고 생각하다 검색해보니 있다! 앙드로마크 도서관에 신청해야지ㅎ
뽈룩스는 하라님의 언급대로 카스토르와 풀록스.
빠트로클은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니쥬스는 아이네아스군의 니수스와 에우리알로스. 근데 주로 니수스와 에우리알로스로 나온다.
에페스티온은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
펭귄판은 [폴뤼데케스, 파트로클레스, 니쑤스, 에위다미다스, 에페스티온, 뻬슈메쟈] 라고 번역했다. 더 알아보기 힘들어… 하지만 주석이 있는 것 같으니 도서관에서 찾아보자.
불어식으로 부르니 이렇게 애매한 이름이 되었군요, 뽈룩스 라면, 아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쌍둥이좌의 주인공 카스트로와 폴룩스… 한 어머니에게서 난 쌍둥이이긴 한데, 카스트로는 주신 제우스의 아들이어서 뭐든 잘 하는 영웅- 그냥 왕의 아들인 폴룩스는 음모에 희생되어 형 카스트로가 분노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부수적인 배역(?). 빠드로클은 의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인 것 같구요. 다른 건 잘 모르겠어요, 설마 삘라르는 의 필라르는 아니겠죠(웃음). 설득력이 있긴 있지만^^
오오 그렇군요!! *_* (연달아 같은 문장;;) 플록스와 파트로클로스.레드문의 필라르론도 설득력있습니다. ^^ 신화나 성서를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고맙습니다. 하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