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색의 연구(1887)
4인의 서명(1890) – The Science of Deduction은 주홍 색의 연구 2장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4인의 서명 1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적인 것이지, 그리고 감정적인 것은 뭐든 내가 만사를 바라보는 냉정한 이성에는 반하는 것일세. 나는 내 판단력을 흐리지 않기 위해 결혼은 안 하려고 하네.” 사랑과 감정과 결혼이라… 홈즈, 결혼에 환상을 품고 있는 듯ㅎ
셜록 홈즈의 모험(1892)
보헤미아 왕실 스캔들(1891.07) 1888년 3월 20일 밤, 왕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다 우연히 베이커 스트리트를 지나게 되었다. -“왓슨, 자네는 눈으로 보긴 해도 관찰을 하지 않아.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예를 들어 자네는 홀에서 이 방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허구헌 날 봤어. … 그렇다면 계단이 몇 개지?” “나한테는 아직 정보가 없어. 정보를 얻기 전에 가설을 세우는 것은 크게 실수하는 거야. 은연중 가설에 맞추어 사실을 곡해하게 되거든. 사실에 맞는 가설을 세우지 않고 말이야.”
빨강머리 연맹(1891.08) 지난 해(1890년) 가을 어느 날 홈즈를 찾아갔을 때였다.
정체의 문제(1891.09) 우리가 베이커 스트리트의 하숙집 벽난로 앞에 마주앉아 있을 때…
보스콤밸리 사건(1891.10) 어느 날 아내와 내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하녀가 전보를 가져왔다.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1891.11) … 1887년은 흥미진진한 사건부터… 때는 9월 하순,
입술이 뒤틀린 남자(1891.12) 1889년 6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푸른 석류석(1892.01) 크리스마스 다음다음 날 아침,
얼룩 띠(1892.02) 우리가 총각 시절 베이커 스트리트의 하숙집에서 같이 살 때 말이다. …때는 1883년 4월 초였다.
기술자의 엄지손가락(1892.03)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1889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독신 귀족(1892.04) 내가 결혼하기 몇 주 전이었다.(1888년) -홈즈를 사교계에 초대하는 편지를 종종 받은 듯?ㅋ
녹주석 코로닛(1892.05) 화창하고 상쾌한 2월의 아침이었다.
너도밤나무 저택(1892.06) 이른 봄날, 어느 쌀쌀한 아침무렵이엇다.
셜록 홈즈 회고록(1893)
경주마 은점박이(1892.12) 어느 날 아침, 같이 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앉았을 때
소포 상자(1893.01) 푹푹 찌는 8월의 어느 날이었다. – 액자가 없는 그림이 언급된다.
노란 얼굴(1893.02) 어느 이른 봄날, 그는 평소답지 않게 아주 느긋해져서 나와 함께 공원에 산책을 다 나갔다.
증권회사 직원(1893.03) 나는 결혼한 직후 패딩턴 지역의 의원을 인수했다. …석 달 동안 워낙 일에 치여, … 그래서 6월 어느 날 아침에 내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영국 의료 저널을 읽으며 앉아 있을 때, “왓슨 부인께서는 우리의 ‘네 사람의 서명’ 사건에 연루된 흥분 상태에서 이제 완전히 벗어나셨겠지?” …”그렇다면 오늘도?” “물론, 오늘도. 자네만 좋다면.” “버밍엄까지 가야 하는데도?”
글로리아스콧호(1893.02) “이건 내가 맡은 최초의 사건이거든.”
머스그레이브 씨네 의식문(1893.05)
레이게이트의 지주들(1893.06) 그러니까 1887년 봄, …전보가 리옹에서 날아온 것은 4월 14일이었다.
등이 굽은 남자(1893.07) 어느 여름 밤, 내가 결혼한 지 몇 달 되었을 때였다.
입주 환자(1893.08) 홈즈와 내가 베이커 스트리트의 한 집에서 산 지 어느덧 한 해가 다 되어가던 무렵인 것만은 분명하다. 바람 드센 10월의 어느 날,
그리스인 통역사(1893.09) 어느 여름날 저녁, 차를 마신 후였다.
해군 조약문(1893.10/11) 내가 결혼을 한 직후인 그해 7월,
마지막 문제(1893.12) 지난 2년 동안… 1891년 5월
바스커빌의 개(1901.08)
돌아온 셜록 홈즈(1905)
빈집(1903.10) 1894년 봄, …그런데 그가 마침내 금지를 풀어준 것이 바로 지난 달 3일이다.
노우드의 건축업자(1903.11) 홈즈가 돌아온 지 몇 달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의 요청대로 나는 의원을 처분하고 베이커 스트리트의 옛 하숙집으로 돌아가서…
춤추는 사람들(1903.12) …한 달 전인 6월 말에, … -큐빗의 진술 중
홀로 자전거 타는 사람(1904.01) 1895년 4월 23일 토요일 – 원래 화요일이어야 함.
프라이어리 스쿨(1904.02) 5월 중순. -방에 곰 가죽 깔개가 있음
블랙 피터(1904.03) 1895년 7월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턴(1904.04) 여러 해가 지났는데, -1899로 추정됨
여섯 개의 나폴레옹 석고상(1904.05) 어느 날 저녁,
세 학생(1904.06) 때는 1895년이었다.
금테 코안경(1904.07) 1894년에 우리가 다룬 사건을 기록한… 대로 암살자 휴렛을 추척해서 체포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공로로 홈즈는 프랑스 대통령의 친필 감사 편지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실종된 스리쿼터백(1904.08) 한 칠팔년 전 음울한 2월의 어느 날
애비 농장 저택(1904.09) 1892년의 겨울이 저물어 가는 어느 날, 혹독하게 추운 밤이 지나고 서리 낀 아침에 누군가 어깨를 흔들어 잠이 깼다. 홈즈였다. …”어서, 왓슨, 어서 일어나!” “게임이 시작됐어. 말하지 마! 어서 옷을 입고 따라와!”
제2의 얼룩(1904.12) …사건 중 마지막으로 선보이고자 한 것이 바로 [애비 농장 저택]이었다. 하지만… “홈즈씨, 당신은 마법사군요. 이것이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죠?” “다른 곳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공포의 계곡(1915)
그의 마지막 인사(1917) – 왓슨의 인사말
등나무 별장(1908.09/10) 그것은 1892년 3월 말로… “만나 볼 거야?” “이봐, 왓슨, …내 정신은 헛도는 엔진 같아.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곧 터져버릴 것만 같단 말이야. 인생은 진부하고, 신문은 따분해. 범죄계에서 대담무쌍한 로맨스가 영영 사라져버린 모양이야.” -이 시기는 물론 대공백기이다. 도일경…
붉은 원(1911.03/04) -홈즈는 아첨에 약한 사람인데, 정확히 말하면 친절에 유독 약하다.
브루스파팅턴호 설계도(1908.12) 그해 1895년 11월 셋째 주에는 런던에 노란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이 사회를 위해서는 내가 범죄자가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
죽어가는 탐정(1913.12) 홈즈는 그야말로 런던 최악의 하숙인이었다. 반면에 하숙비는 왕후처럼 후하게 냈다. …내가 결혼한 지 2년째 되던 날,
프랜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1911.12) “근데 왜 터키식이야?”
악마의 발(1910.12) 때는 1897년 봄이었다. …3월 16일 화요일… -(그는 전보가 가는 지역에는 편지를 보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왓슨, 나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지만, 만일 내가 사랑을 했다면, 그리고 내가 사랑한 여자가 그렇게 종말을 맞았다면, 나 또한 무법의 우리 사자 사냥꾼처럼 행동했을지도 몰라. 그걸 누가 알겠어?”
그의 마지막 인사(1917.09) 세계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8월, 그 8월의 둘째 날 밤 아홉시였다. …”그런데 왓슨,”…”자네를 여태 자세히 바라보질 못했군. 세월이 자네를 비켜가기라도 한 건가? 옛날처럼 쾌활한 소년처럼 보이다니 말이야.” … “이런, 왓슨! 자네는 변화무쌍한 시대에도 한결같군.”-도일경이 전선을 둘러볼 때 조르주 루이 욍베르 장군이…”셜록 홈즈 그분은 지금 영국군 병사입니까?” “하지만 장군님, 그는 너무 나이 들어서 군복무를 할 수 없습니다.” /3인칭
셜록 홈즈의 사건집(1927) – 도일의 인사말
유명한 의뢰인(1925.02/03) 홈즈도 나도 터키탕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 1902년 9월 3일 우리가 누워 있던 곳이 바로 거기였다.
피부가 하얘진 병사(1926.11) 1903년 1월이었다. -내 친구 왓슨은 일단 마음을 먹으면, 무한정은 아니라도 여간 끈덕진 게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나더러 체험담을 직접 써보라고 들볶았다. 어쩌면 내가 괴롭힘을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쓴 이야기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걸핏하면 꼬집어대며, 사실과 수치에 충실하지 않고 대중의 취향에 영합한다고 빈정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럼 직접 써보지 그래!”그가 툴툴거렸다. …그 당시 선량한 왓슨은 나를 버리고 아내한테 갔는데, 그건 우리의 관계에서 내 기억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혼자였다. /홈즈 1인칭
마자랭 보석(1921.10) “정신력은 끼니를 걸러야 날이 바짝 서거든” /3인칭
세 박공 집(1920.10) 나는 홈즈를 한동안 보지 못해서, -“평소처럼 내가 중죄를 사화시켜야겠군요”
서식스의 뱀파이어(1924.01) 11월 19일(사건 의뢰 편지의 날짜) -홈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둘렀다. “왓슨, 자네의 한계가 어딘지 모르겠군.” 그가 말했다. “자네한테는 내가 모르는 구석이 참 많아.”
세 명의 개리뎁 씨(1925.01) 1902년 6월 말, -장차 언젠가는 밝힐 수 있게 될 임무 덕분에 수여된 기사 작위를 홈즈가 거절한 바로 그 달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다치지 않았지, 왓슨? 제발 다친 게 아니라고 말해 줘.”
토르교 사건(1922.02/03) 10월의 어느 궂은 날 아침이었다. -“추리 능력에는 전염성이 있는 게 분명해, 왓슨” 그가 응수했다. “그래서 자네가 내 비밀을 탐지할 수 있게 된 거야.”
기어다니는 남자(1923.03) 1903년 9월의 어느 일요일 초저녁에 나는 홈즈의 간결한 전갈을 받았다. “별일 없으면 즉시 와줘. 별일 있어도 역시 와줘 -S.H.” …그는 내 면전에서 떠들어대며 생각하길 좋아했다. 그것은 내게 하는 말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침대를 향해 주절거렸어도 되는 말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사자의 갈기(1926.12) 1907년 7월 말경, 강풍이 들이닥쳤다. -[사자의 갈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된 의문점은 홈즈가 이것을 왜 썼는가 하는 것이다. /홈즈 1인칭
베일을 쓴 하숙인(1927.02) 때는 1896년 말이었다. 어느 날 오전에 나는 어서 와달라는 홈즈의 전갈을 받았다.(왓슨은 도대체 어디에서 살고 있었단 말인가) …홈즈가 긴 팔을 내밀고는, 자못 동정심을 비치며 그녀의 손을 토닥거렸다. 홈즈는 결코 동정심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쇼스콤 고택(1927.04) 1902년 사건으로 추정됨 -“그래.”내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 말이라면 나는 언제든 믿을 자세가 되어 있어.” … “그런데 왓슨, 경마에 대해서 좀 알아?” “당연하지, 상이연금의 절반은 경마에 바치고 있으니까.(요즘 구매력으로 일주일에 30만원-ㅁ-)”
은퇴한 물감 제조업자(1927.01) 1898년 -셜록 홈즈는 그날 아침 우울하고 철학적인 기분이었다. …”우리는 손을 뻗고, 움켜잡지. 그런데 마지막에 우리 손에 남아 있는 게 뭐지? 허상. 아니 허상보다 더 나쁜, 비참함.” … “담벼락은 일종의…” “시는 그만 읊어, 왓슨.” 홈즈가 독하게 말했다. “높다란 벽돌담이었다 이거지?” 마지막(엄밀히 말하자면 마지막에서 두번째) 사건까지 왓슨을 구박함ㅋ … “자네는 임무를 수행하며 중요한 모든 것을 놓쳤어.” … “내가 택할 만한 다른 직업이 있다면 항상 물망에 오르는 게 바로 빈집털이거든.”
오코너, 비밀의 봉인
메이어, 7퍼센트 용액/카나리아 조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