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끄적끄적.

* 나는 전설이다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다른 종족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과연 하나의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그 사회의 3년 후는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아니면 사람들은, ‘전설’을 만들지 않는 방식을 찾게 될까.

음, 최근에 읽은 ‘미래의 아이들’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이 초현실적인; 시공간에서도 접수대와 엘리베이터에는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앉아 있더군. 처음에 봤을 때는 안 보였던 것인데.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으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이, 아마도 화자가 어린 소년이기에 더 그랬을 테지만 주위의 이목과 관계맺음의 시시콜콜한 반전밖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20세기 초반 벨 에포크 시대의 부르주아지의 일상이란 것이 지금에 와서는 풍자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만 접해왔던 부르주아지의 일상이 이 소년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삶의 순간이다.

[우리의 과거도 그와 마찬가지다. 과거의 환기는 억지로 그것을 구하려고 해도 헛수고요, 지성의 온갖 노력도 소용없다.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 이 물질적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우연에 달려있다.]

[무엇인가 부딪친 것처럼, 유리창을 때리는 작은 소리가 한 번, 다음에 창 위쪽에서 뿌려진 듯한 모래알처럼 수북하고도 가벼운 낙하, 다음에 그 낙하는 넓어지고, 고르게 되고, 리듬을 띠고, 흐르고, 울리고, 음악처럼, 무수히, 고루고루 퍼졌다. 비였다]

…그렇다. 아직 1권밖에 안 읽었다. 나머지는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주위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시선에, 이 소년이 어떻게 클지 조금 걱정이 되고 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얼마 전에 단테님도 지적한 얘기지만, 크리스티의 모험 소설의 악당은 주로 크렘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주요한 악업은 파업을 획책하는 일이다. 재밌게 읽기는 하지만 등이 좀 간지럽다.

* 케스
탄광을 끼고 있는 마을길을 빌리가 달려내려간다. 빌리 케스퍼와 빌리 엘리어트. 한 빌리는 권투를 배우러, 또 한 빌리는 신문배달을 하러. 비슷한 탄광 마을이고 비슷하게 가난한 한부모 가정이고 비슷하게 형이 있지만, 없는 살림에 권투 학원비를 내주는 아버지가 있는 빌리와 용돈이 없어서 신문배달을 하고 소소한 도둑질을 하는 빌리의 일상은 너무나 크게 벌어져버린 영화의 결말들만큼이나 다르게 느껴진다.

조명도 없는 학원 강당에서 빌리가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출 때, 이 깡마른 소년이 정말 빛나 보이던 것처럼 황량한 벌판에서 매를 날리는 또다른 빌리도 그 공간에서 빛이 난다. 어른 반바지에도 쏙 들어가는 이 작은 소년이. 매를 날릴 때면 찾아오는 사위를 잦아들게 하는 침묵, 바라보는 것을 허락해 주는 자연의 어떤 단면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에게 말하는 빌리의 낮은 목소리는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심사위원들에게 춤을 출 때면 나는 것 같다는, 전기가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고하는 또다른 빌리의 목소리와 겹친다. 나이와 처지를 떠나 삶의 아주 진지한 일면을 이미 경험한 소년들.

빛나는 순간을 품고 있는 남루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빌리 엘리어트의 현재만큼 따뜻한 결말은 아니더라도 조금의 희망이라도 주었다면 감동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텐데, 영화는 암담한 일상마저도 꺾어버리며 갑자기 끝나버린다. 빌리는 좋아하던, 아끼며 키우던 매를 묻기 위해 땅을 판다. 한방울 눈물도 없이, 이를 악물고.

영화의 원작은 교육소설;로 선생님들에게 많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빌리와 케스의 관계가 인상적이지만, 빌리와 선생님의 관계도 일상적이다.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고 야단치던 선생님,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멍석을 깔아주던 선생님,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아마도 빌리에게는 처음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들어주던 선생님. 한 사람이 성장할 때, 그 사람이 키우던 매는, 처음 만난 좋은 선생님은 얼마나 영향을 줄까.
그 체육교사도 소설에 나왔는지 모르겠다. 워낙 어이가 없어서 말이지. =ㅅ= 혼자 선수와 감독을 겸하며 상대 주장을 쫓아내버리는 모습이 당시를 풍자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보면 지나치게 단순한 것 같기도 하고. 켄 로치의 다른 영화에도 축구 장면이 자주 나온다고 하던데 특별전 할 때 이 영화밖에 못 봤다.

* 온
얍삽하게 완결편만 보았다. 근데, 따뜻한 결말인데, 이렇게 공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지?
헬무트에서, 굴라스가 뮈러에게 한 말을 되새기며 ‘그런 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마음이 없다는 건 수치도 없다는 얘긴 걸. 내겐 더이상 추억도 뭣도 아닌 옛날의 기억이 널 괴롭힌다면 백번이라도 더 거짓말을 해 주마’라고 독백하던 장면이 떠올라버렸다.
이건 얍삽하게 완결편만 봐서 그런 거겠지? ;_; 설마 정말 그렇지는 않겠지? ;_;

This Post Has 3 Comments

  1. 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화자는 나이든아저씨(?)인데..^^;
    처음에 잠자리에 드는 즈음의 분위기가 참 아름다와요….
    이렇게 얘기하면 많이 읽은 것 같지만 야금야금 1장만 읽었다는-.- 마음잡고 진득하게 쭉 읽고싶은데 참 안되요 안되
    해마다 신년 계획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독!을 넣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빨리 온 보고싶어요!

    해마다 신년 계획…; 그리고보니 저는 어차피 못 지킬 거 뭐, 하면서 신년 계획을 안 세운지도 오래 되었어요;;
    소년으로 나온 부분이 너무 길어서 첫머리에 아저씨였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ㅂ=
    번역자가 해설에 친절하게 스포일러를 해 주셔서 이 아이가 내 맘에 안 드는 아이(…)로 클 것 같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어요.

    온, 알라딘에는 깔렸더라고요. 전 9월 쿠폰이 나오면 사려고요(…)

  2. 9

    응? 써놓고보니 왠지 잘난척같은 뉘앙스가..- -;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긴 한데.. 으음…☞☜;;;;

    저야말로 아무데나 가서 아실지도 모르지만, 하고 단서를 붙이고 아무나 아는 얘기를 마구 쓰는 잘난척대마왕;;; 아니 9님이 잘난 척 하셨다는 건 아닌데 ‘잘난 척’이라는 단어를 보면 저의 저런 행태가 떠올라 등이 간질간질해져요. 저도 으음…☞☜;;;;

  3. 9

    ㅋㅋ 저도 해설보고 “요놈봐라”했는데.. 하하하
    (근데 사실 잘난척 지대로하면 좀 즐거워요……-.-;)

    요놈봐라 ㅠ_ㅠb
    헤헤 즐겁죠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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