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역사

* 스포일러 있습니다.

조폭가족영화와 가족조폭영화가 트렌드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저로서는 십오년도 넘게(아들이 십대 후반인 것 같으니 결혼 생활이 십오년도 넘었겠죠) 함께 살아온 데다가 무려 마을과 가족을 위해 폭력을 마지못해 행사했을 뿐인 가장을 받아들이지 못할 절절한 이유가 굳이 있나 싶기도 한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하지만 난 십오년동안 함께 살아온 당신 남편이고 아이들 아버지고 범죄를 저지른 것은 먼 옛날의 일이고 당신을 만나 개과천선했다는 얘기는 송강호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남자는 어찌나 한없이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볼 뿐인지요.

30퍼센트 정도는 비고 모텐슨을 보러 간 거였는데 음 정말 멋지더군요. =ㅂ=
그 한없이 안타깝고 난감하고 곤란하고 그러면서도 포기할 것 같지 않고 그러다가 일순 무표정해지는.

와 굉장히 재밌었어요. 연출에 대해 칭찬하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었지만 정말 장면 하나하나가 간결한 스토리의 딱 제자리에 맞물려 있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이렇게 재밌는데 두세개 관에서밖에 개봉을 안 한다니 제가 다 안타까울 지경. 그리고 액션물로 보려면 조금 미안해지기는 하지만 빈손으로 총든 사람 여섯 명을 해결하는 액션이라니 우리 왕님의 솜씨는 녹슬지 않았어요. ㅠㅠ (야 그만해;;)

영화에서 폭력이 시작되는 부분들은 처음에 굉장히 불가피하게 보이기 때문에(총을 든 강도, 집요하게 괴롭히는 급우, 가족을 협박하는 과거의 동료들) ‘폭력의 역사’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폭력은 연쇄적으로, 그리고 점차 더 큰 규모로 집행되고 영화의 엔딩을 지나서도 지속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구요. 그 답답한 엔딩에도 불구하고 과연 톰네 집이 맞닥뜨려야 할 폭력이 이걸로 끝인가 싶기도 합니다. 당장 톰의 형이 최종보스도 아니었거든요.
반면 톰의 과거는 평범하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영화의 폭력은 지울 수 없는 과거와 연결시킬 수는 있지만 본성이라는 지점과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에게는 불확실해요. 미국이라는 특정한 나라의 과거와는 연결하기 쉽지만요…

씨네21에 따르면 ‘<폭력의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들추어내서가 아니라 창조적인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현실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폭력성을 은폐하고 선량한 가장으로 사는 남자의 삶은 사실, 새 출발도, 회개도 아니라 그저 아메리칸 ‘드림’, 즉 환상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영화는 톰의 분열된 역사에서 미국의 역사를 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정작 폭력의 근원이 마을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들의 집단 무지와 환상이 범죄자와 영웅을 동일인으로 만’드는 이 영화는 제가 첫 문단에서 언급한 트렌드와 참 멀어도 한참 멀구나 싶습니다.

* 사족1. 굳이 송강호의 이름을 댄 것은 최근에 찍은 우아한 세계가 생각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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