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백귀야행


여름이 싫다.
더위로 모든 것들이 제정신을 잃고
이상하게 변하기 때문에.

형태가 허물어지고 섞여버린다…
낮과 밤,
동물과 식물,
열반과 이승…
인간과 그렇지 않은 것들.

리쓰의 여름에 대한 감상은 조금 별개로 하고;;; 하긴 찜통안에 들어앉아있는 듯이 더운 날은 정말 모든 경계가 흐물흐물 녹아사라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겨울은 뭐든지 금새 넘쳐 얼어버리는 계절. 이 멘트 기억하시는 분 계십니까? =)

백귀야행을 읽을 때마다, 일본의 시골 동네에는 이런 풍경이나 풍습이나 풍속이 남아 있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결국 일본이 어떤지 잘 모른다는 얘기.) 이렇게 근대 이전, 도시화 이전이 그랬듯이 삶과 죽음과 저승과 이승과 유년과 노년의 경계가 희미한지 궁금해요. 근대 이전에는 개인의 몫이 뚜렷하지 않았듯이 이런 삶의 모습들도 경계가 뚜렷한 것이 아니었죠. 근대의 도시-에서는 이것들이 모두 경계가 나뉘어지고 각각 다른 영역에서 관리되고 있지만요.

집안에 유골을 모시는 풍습, ‘영감’에 대한 이야기, 집안의 관례에 따라 결혼하는 사람들, 집에 있는 사람들이 늘상 입는 기모노, 등등이요.


우리가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듯

그들도 역시 우리를
그리워하는구나.

사실 ‘귀신 이야기’라면 귀신이나 요물을 퇴치하거나 최소한 성불시켜 주는 것이 보통의 패턴일 텐데, 주로는 함께 사는 것을 택하는 백귀야행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신기했습니다. 우리 민담에도 도깨비가 꽤 흔했는데, 이 정도로 ‘함께 생활한다’는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일본의 풍습들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때문인지, 정말, 굉장히 많군요.


어둠을 꿰뚫어 보는 네 눈이 우리를 살게 하지.
있을 리 없는 존재가
존재할 수 있게 돼.

‘두려워하니까 두렵다’는 동어반복같지만, 인식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지, 인식이전에 존재하는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네요. 게다가 이 세계는 어찌나 이해할 수 없는 인과에 얽매여 있는지요. 역시 살아있는 사람은 따라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서서히 느껴지는 것이, 이쪽 세계는 이쪽 세계이고 저쪽 세계는 저쪽 세계. 이렇게 이쪽에 사는 사람들은 저쪽과 멀어지는 것이, 글쎄요, 그럼 저쪽세계는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게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적’ 판타지 시대를 열었던; 퇴마록이 도깨비 등의 민담이 아니라 이른바 도시괴담류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과 묘하게 대조되네요. 퇴마록이 진행되면서 무속 얘기들도 나오긴 하지만 일상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사건들만 등장하지요. 사실 한국사회야 근세 이전과 근대(근대라고 하기 민망하지만;;) 사이에는 커다란 단절이 존재하기는 하지요.

+ 원래 8월 8일 시작했던 글이군요; 오늘은 10월 3일.
++ 리쓰나 즈카사가 잘 살지도 궁금해요. 백귀야행이 진행되면서 계속 되풀이해서, 이이지마 료는 저쪽 세계를 너무 가까이하고 요물을 마음대로 부렸기 때문에 20년이나 일찍 죽었다고 얘기하잖아요. 하긴 이이지마 료는 ‘원래의 수명’보다 일찍 죽었다고 해도 나름 행복하게 산 것 같기는 하고, 리쓰나 즈카사도 지금 상황에 대해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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