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서로에게 묻는다. 그러다가 가볍게 웃고 어색한 침묵. 은결이가 착한 아이답게 양보하고 먼저 대답한다.
좋아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엄마는 한가지밖에 몰랐잖아요?
한가지라니…
은결이가 말을 고르는지 눈길을 옆으로 돌리고 잠시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뭘 수집하든가 늘 같은 길로만 다니든가… 신들린 것처럼요.
내가 알기론 그런 분이 아닌데.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 은결이 생각하구 다를 뿐이지.
어려서는 미운 적도 많았는데 커서는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제 물음에도 대답해주셔야죠.
무슨 얘기였지…?
아버지 얘기요. 미국에서 함께 계셨다면서요?
은결이처럼 말하자면 그도 한가지밖에 모르는 사람이지.
그애는 또 착한 아이답게 긍정을 해주고 만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두 괜찮은 거 같애요.
은결이와 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그애와 나는 미끄럼틀이며 그네가 있는 모래밭에서 꼬마들이 재깔대며 뛰노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다. 웬 노인이 여자아이의 뒤에 서서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조금씩 힘을 주어 밀면 그네가 드높이 올라가고 아이가 짧은 다리를 흔들면서 깔깔대고 웃는다. 쇠줄이 삐걱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솜사탕을 먹는다. 혀끝으로 부드러운 설탕의 섬유질을 더듬으면 입술에 자꾸만 달라붙는다. 내가 손수건을 꺼내어 은결이의 뺨에 붙은 분홍색 물감을 닦아준다. 그애는 내가 자기의 아비라는 사실을 이미 알아채고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저렇게 나하구 놀아주었으면 했어요.
엄마하군 친하지 않았어?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뭐랄까, 서로…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
그럼 어떻게 했니?
그냥 혼자 놀았죠 머. 엄마도 혼자 지내고. 그러다보니까 오히려 무슨 날이라고 놀이동산에 소풍이라도 가면 서로 배려하느라구 피곤했어요.
왜 그랬을까…?
서로 섭섭하게 생각하구 있는 거에요. 그러다가 미안해져서 지나치게 잘해주려고 하고, 둘 다 알아채고, 그 반복이에요.
은결이가 전화를 받는다. 그러고는 엉거주춤 일어난다.
저 이제 가야 해요. 아버지, 자주 만나요.
가뭇, 하면서 모든 장면이 사라졌다. 고속버스의 차창 밖으로 봄들판이 지나가고 있다. 개나리가 활짝 피어난 언덕이 천천히 지나갔다. 새잎이 돋아나고 있는지 대지가 연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마두 거의 마지막 페이지.
이 책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다른 할 이야기도 많지만, 또 좋아하는 대목을 날름 갖고 왔습니다. 감정표현도 서툴고 관계를 맺는 것도 서툰 두 사람의 따뜻하지만, 짧았을 이야기. 섭섭함은, 감정은 너무 긴데 우리 생에서 관계는 항상 짧군요.

This Post Has 4 Comments

  1. kritiker

    뭔가 마지막이 아파요. 읽어봐야지…

    (지금 빌린책은 언제 다 볼테뇨;;)

  2. Cain

    네. 잘 모르는 사람이 죽었는데 왈칵 눈물이 나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요.

  3. 아기사자

    도서관 열람실에서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러서 구석으로 들어갔던게 기억나네요. 한없이 눈물이 흐르게 한다기보다는 뭔가 가슴 한 구석을 시리게 만드는 소설인 것 같아요

  4. Cain

    저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 떠나버린 기분, 이었어요. 그죠, 막 슬퍼할 수도 없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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