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하다가 스마일리는 우산꽂이에 들어 있는 낯선 우산에 시선이 멈추었다. 가죽 손잡이에 이니셜없는 황금 링이 달린 비단 우산이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전광석화와 같이 시간 계산이 흘러들었다. 우산꽂이에도 물방울이 없고 또 우산이 보송보송한 것을 보면 비가 내리기 시작한 6시 15분 이전에 거기 놓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아주 근사한 우산이었다. 우산 끝은 완전히 새것은 아니었지만 긁힌 자국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그 우산은 아주 민첩한 젊은이, 가령 앤의 새 애인 같은 남자의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우산 주인은 쐐기 나뭇조각에 대해서 알고 있고, 일단 집 안에 들어온 다음에는 그 쐐기를 도로 원위치 시킬 줄 알고, 문을 여는 바람에 흩어진 우편물을 읽지 않고 문 밑에 가지런히 도로 놓을 줄도 아는 것을 보면 스마일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따라서 앤의 애인 나부랑이는 아니고 스마일리처럼 전문가였다. 한때 그와 긴밀하게 일했던 자로서, 업계의 전문 용어로 말한다면 필적을 읽을 줄 아는 자였다.
거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그는 그 문을 부드럽게 밀어서 더 열어젖혔다.
[피터?] 그가 말했다.
그는 열린 문틈으로 가로등 불빛에 비친 스웨이드 가죽 구두 한 켤레를 보았다. 게으르게 포개어진 그 구두는 소파 끝 부분에 비죽 나와 있었다.
[옷은 그대로 입고 있는 게 좋겠습니다. 조지, 올드 보이]
다정한 목소리가 말했다. [갈 길이 좀 멀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