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연인

낯선 연인/크리스토퍼 하인


국가에서 낮은 혼인율이나 낮은 출산율을 걱정한다면 이 소설을 대대적으로 읽히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양장본 문고본으로 판형도 여러가지로 내놓고 느낌표같은 데도 나가고 신문 서평에서 크게 써주고 큰 서점 눈에 잘 뜨이는 가판대에 배치하고 독후감 모집 등등… 써놓고 보니 개그로군요.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잘 지낸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나는 전혀 잘 지내고 있지 않다는 탄식으로 들렸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 각오를 하고, 아무것도 나를 상처입히지 못하도록 무장을 하여 상처입지 않도록 되어버린 상태. 그리고 이 상태에 따라붙는 질문, 이런 것이 잘 지낸다는 걸까.
하지만 원래 인간이란 홀로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인물의 눈에 비친 세상이라 그런 것인지 등장인물들은 빠짐없이 모두 미치도록 외로워 보입니다. 헤어진 남편, 시골에서 살고 있는 그리고 딸에게 무엇을 바래야 할 지 어떻게 해 주어야 할 지 모르는 부모님, 마찬가지 처지의 이모 부부, 무리를 지어 길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 가끔 바람을 피우는 직장 동료, 가끔 남편에게 강간당하는 동료, 휴양지에 사는 친구 부부, 언니의 옛 남편과 외도하는 동생, 학생들을 모욕하던 지난 시절의 교사, 방문해달라고 자주 부탁하는 원장 혹은 그의 부인, 혼자 새를 키우며 사는 이웃집 사람,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아내와는 별거중이며 그저 경제적인 유대만을 갖고 있는 잠시의 애인, 열렬하게 사랑했고 결국 증오와 성장과 언쟁으로 갈라선 어린 시절의 친구.

얇은 책이고 누구나 고독한 엷은 그림자로 이 사람의 옆을 지나쳐가서 등장인물이 별로 많이 않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쓰다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군요. 이 쓸쓸한 사람들 가운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더 이상할 것 같아요. 이 사람의 주위에서 쓸쓸하지 않고 빛나는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의 카타리나와, 휴양지에서 잠시 만나 사과와 웃음을 나누었던 소녀 뿐 입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 사람들은 다시 연이 이어지지 않을 사람들이에요. 카타리나는 서독으로 갔기에 아마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이 소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기에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요. 이 사람이 이 둘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도 결국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 만난다면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에 갔을 때 느꼈던 환멸과 비슷한 것을 느낄 테니까요. 그래서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쓸쓸함과 낯섬은 결국 살아가는 어떤 방식에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혹은 자체의 모습을 비추는 것 같습니다.

나는 모든 것에 대해 각오가 되어 있다. 나는 모든 무장이 되어 있다. 이제 아무것도 나를 상처입히지 못할 것이다. 나는 상처입지 않게 되어버렸다. 나는 용의 피를 뒤집어 썼다. 보리수 이파리 하나 그 어디에서라도 떨어져 나를 무방비가 되게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살갗으로부터 이제는 내가 나갈 수가 없다. 상처입지 않는 나의 껍질 속에서 나는 죽고 말 것이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나를 상처입히지 못하도록 무장을 했다고 하지만 이 ‘무장’이라는 느낌에 어울리는 차가운 사람은 아닙니다. 조금 귀찮아 하는 속내를 이 책에는 솔직하게 드러내지만 시골의 부모님에게 정기적으로 찾아가고 연애를 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혼자 사는 이웃집 아주머니를 돌봅니다. 이런 외양이 있으니 나는 잘 지낸다, 라고 말하는 것일테고, 그래서 쓸쓸함이 더 깊은 것이지만요.

나는 정서적 균형이 잡혀 있다. 어느 정도는 인기도 있다. 나는 다시 한 남자 친구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나를 수습할 수 있으며, 그게 별로 어렵지 않다. 나는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 병원에서도 즐겨 일한다. 나는 잠을 잘 잔다. 악몽을 꾸지 않는다. 이월에는 새 자동차를 샀다. 나는 실제보다 젊어 보인다. 나에게는 언제든 예약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미장원이 하나 있다. 나부터 우대해주는 정육점이 하나 있고, 나의 스타일에 대한 센스가 있는 양장점이 하나 있다. 나에게는 뛰어난 부인과 의사가 하나 있다, 결국 나는 동료 아닌가. 그리고 나는, 유사시에 좋은 병원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치료원중에서 가장 훌륭한 곳으로 보내질 것이다, 결국은 그럴 때 또한 내가 아직 동료일 테니. 나는 내 집에 만족한다. 나의 살갗은 정상이다. 나는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할 능력이 있다. 나는 건강하다. 내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는 이루었다. 뭐가 부족한지 모르겠다. 내가 해낸 것이다. 나는 잘 지낸다.

그런데 문득, (여기에서 개그로…) 사람들이 이런 깊지 않고 뜨뜻미지근한 관계를 맺고 있는 또다른 책이 생각났습니다.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 찬우의 부모님은 자기 페이스대로 산다고 아들은 외할머니에게 맡겨 두고 외유중이고, 절친한 친구인 강민은 사귄지 몇 년이 지나도록 찬우의 부모님이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도 알지 못하죠. 아무도 연애라는, 깊고 상처로 끝날 수도 있는 관계에 몸을 던지는 사람도 없고 깊게 관여하지도 않고 절친하다고 해서 관계에 쏠리지도 않게 지내고들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깊은 관계를 맺고 상처를 입기 전과 후이기 때문일까요. 혹은 그냥 젊다는 것은 좋은 것일까요. =ㅂ= (뭐 결론이 이래;)
…라기보단 그냥 책의 성격이 다른 거겠지요. 보는 방식에 따라 삶의 같은 면도 달라보일 수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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