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내가 뱉은 말들이 일관성을 지니기를 강박적으로 원한다.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면 자신이 무엇을 말했는지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누가 그랬더라. 하지만 진실은 무엇일까. 기억도 윤색된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어려운 판에 진실이라.
나는 나를 설명하는 문구를 계속 쌓아가고 나는 그 안에 갇힌다. 내가 뱉은 문구를 거짓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그 문구가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아마 사소한 것일 것이다. 아니 난 왜 그럴 듯 하게-일관성있게 이어져야만 하는 문구들만 내뱉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인지. 진실이나 그에 비슷한 것과 거짓이나 그에 경계하는 것이 혼재된 내 안에서 나는 그간 만들어 놓은 진실(만들어놓은 진실이란 얼마나 우스운 단어인가)에 어긋나지 않은 것을 끄집어 내려 애쓴다. 혹은 애쓰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만들어진 버릇이니까.
결국은 그래서 이제서야, 어린 시절에서 그다지 많이 걸어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라도, 걸어나가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어디로 걸어갈 수 있다는 거지? 어차피 세계는 일관성을 지니지 않는다. 세계는 일관성을 지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데, 난 거기에서 무엇을, 굳이 애써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1. 쿨핫의 완결을 원했던 것은, 그 몇가지 문구들이 굉장히 내가 고민하던 것과 닮아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게으르게도 그 애들이 내 대신 해답을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1.
…그건 학생 백일장에서는 드물게도, 짧은 소설이었다.
아니… 어디로 보나 거기서 ‘학생 백일장’의 냄새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 글은… 넘치는 재기와 기지로 무장되어 있었다. 아마 단지 그것만으로도 눈에 확 띄는 글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정신을 차려 읽어보면- 그 글이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가 그 뛰어난 재기 밑에 감추어진, 일견 관조적인 듯 하면서도 매우 따뜻하고 힘찬 그 무엇 때문임을 알 수가 있다.
그걸 아마 글쓴이의 인간성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 경우, 정말로 나를 끌어 당겨서 그 글을 몇번식이나 다시 읽어 보게 만든 것은 다른 어떤 것이었다.
처음에 글을 읽었을 때 그것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아주 희미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이상한 향기가 남아 있었을 뿐.
그 이상한 향기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또는 어쩌면 단지 그 향기에 매혹되어서 나느 그 글을 읽고 또 읽어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그 ‘어떤 것’은 점점 확실해졌으며 존재감을 더해 갔다.
그리고 그 존재감이 무거울 정도로 뚜렷하게 내게 다가왔으 ㄹ때 나는 그것이 무어신지 알 수가 있었다.
그건 ‘슬픔’이었다.
과연 이 글을 뽑은 이들이 행 사이에 숨어 있는 이 야릇한 향기의 정체를 알았을까?
아니, 그 향기의 존재 자체를 과연 감지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아무나에게 뿌려 주기 위해서 이 고귀한 향료를 집어 넣은 것이 아니야…
이 사람은 자신의 정수 중에서도 정수를 증류하여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미세하고 빛나는 가루로 만든 뒤- 세심하게 자신의 작품에 흩뿌려 놓은 것이다… 단지 몇 명의 선택된 자들을 위해.’
그 글은 며칠 간 나를 사로잡아서 다른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이것은 나에게는 한번도 없었던 종류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떤 책도, 영화도, 인간도 내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적은 없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우리 학교 3학년이고-
그것은 즉 매일 같은 건물안에서 그녀와 내가 함께 생활하고 있음을 뜻한다는 것이 정말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1.
…空虛
그녀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
텅 빈
공허.
1.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또 보고, 또 바라 보지만-
내 눈에 맺혔던 그 모든 영상들은 다 어디로 가느 것일까?
어느 책에서 봤던 것처럼-
그 영상들 역시 다른 모든 빛과 마찬가지로 빛의 속도로 끝없이 뻗어 나가게 되는 걸까?
그래서, 뛰어난 시력과 장비를 갖춘 외계인이 있다면 언젠가는 그 영상을 몇백광년 떨어진 어느 곳에서 잡아서 볼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는, 그 영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다른 세계 다른 시간에 존재하던 어떤 생명체에게 있어서- 그 영상들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소중한 것들이었다는 것을, 그는 짐작할 수 있을까.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단지 바라보기 위해서 어떤 기분으로 고개를 들고 눈을 돌렸는지, 그는 상상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그 영상들이 어디로 날아갔든지 간에-
‘진짜’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이 순간이 순간 그 자체로서 영원하기를.
1.
만일 상대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라면-
난 다른 것은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어.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기적이잖아. 안 그래?
우주적인 이벤트지.
한번 포기했던, 스쳐 지나가게 놔 뒀던 내 마음의 한 조각이-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이로, 더욱 싱싱한 빛을 띠고 눈 앞에 다시 나타났어.
이런 걸 아마,
행운이라고 하겠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행운…
1.
‘정상’이란 단어는 ‘머리수가 많다’는 의미라는 거, 알고 있냐?
그러니까, 그 ‘제대로’ 된 게 누구한테 맞춘 거냐고. 많은 쪽 아냐.
소수가 없으면, 다수란 개념 자체도 없어.
그리고 소수는 있어왔으니까- 그 존재 역시 충분히 ‘자연스럽’지.
어차피 세계의 구성요소 중의 하나야.
진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나머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확실한 것’?
–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통하는 거 말이야.
그런 거 없어.
– 확실해?
나에게는. 그리고 그거면 난 됐어.
…내 안에 있는 맹목성을 알고 있다.
단지 원하는 것-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따라 움직이는 침착하고 집중력 강한 야생 동물.
철저하게 스스로의 우선 순위에 따라 행동하는.
…경계선이 있는 것은, 편리하다.
그러나 정말로 자신에게 솔직해지려 하면-
모든 것이 모호해지고, 뒤섞이기 시작한다.
…어떤 무언가가 자신에게 있어서 ‘대체 불가능’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경험인가.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일단 알게 되면-
세상은, 다시는 그 우중충하고도 편안한 색조를 회복해 주지 않는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아주 순식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리는
그 무시무시한 변모.
마음에, 구멍이 뚫려 버린 거다.
앞으로도 끈질기게 존재할, 내부 어딘가의 텅빈 공간.
자족의 행복한 황금시대는 끝났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꽤 여러 가지 이름으로 지칭하지만-
난… 그걸 뭐라고 이름붙여야 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거부할 수 없다는 것.
부인할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결코 포기할 수도 없을 거라는 것.
다만 지금은, 그저 손을 놓고 가만히 서서- 되어가는 것을 바라 볼 뿐이다.
저항하지도 않고-
매달리지도 않으며.
그것도 꽤… 나쁘지 않다.
1.
다
그렇겠지만-
특히 노래같은 건,
그렇다.
처음
들었을 때의
주변 상황이
강한 이미지로
남은 경우-
나중에도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절로 그 처음 순간이
생각나버리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들을 원하지만
원하는 것을 직접 손에 쥘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대신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연관물]들을 원하게 되고…
상인들은 돈을 번다.
그런 걸 가져 봤자,
사실 그것 자체는
아무것도
아나라는 걸
잘 알고 있어도-
[본체]와
어설프게나마
연관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못내 사랑스럽고
탐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에는
추억의 노래를
신청하는 엽서가
끊이지 않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를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