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오이를 왜 봐?" –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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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헛 참, 엄청 삽질하는 성격인가봅니다. 저두.

사실 원고 쓴다고 책상앞에 앉았는데요. 일찍은 아니지만 일어나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해먹고 부엌치우고(집안일로 도피;;) 그리고 다른 글로 도피;;;

언니네 사이트에서 야오이로 검색하다가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봤어요.
“야오이를 왜 봐?” “야하니까” 흠흠 그렇구나, 여성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여성주의적 포르노라는 것인가. 하지만 정말, 왜 이성애자인 여성들이 남성들의 연애담인 야오이를 보는 걸까요.

-> 여기쯤에서: 야오이를 보는 여성 일반,에 대한 것을 쓰기엔 사실 야오이도 잘 모르고; 그냥 ‘나’의 입장에서

그건 확실히 내가 자신을 욕망의 주체로 긍정할만큼 성숙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포르노가 남성의 시선에서 욕망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사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해석되지 않을만큼 ‘기존의 시선’을 갖고 있으니까요.
여성의 시선에서 욕망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혹은 욕망을 그리는 것은 꼭 어떤 성性의 시선을 갖춰야 하는 것인지?

마찬가지로 언니네 사이트에서 본 것인데(언니네의 경우는 로그인해야 글을 볼 수 있고, 로그인할 회원 아이디를 만들려면 주민번호도 입력해야 하고 아마 여성의 경우에만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따로 구체적인 글쓴이를 밝히지는 않으려구요. 사실은 여러 글에서 복잡하게 봐서;) 요시나가 후미의 ‘사랑해야 하는 딸들’에 대한 감상문에, 예전에 요시나가 후미가 야오이를 그릴때 보이던 색기는 없는 것 같다, 역시 같은 성性에 대한 이야기라서 거리두기가 힘든걸까, 하는 평을 봤습니다.

팬픽에 대한 평가에서, ‘좋아하는 캐릭터가 (자신과 같은)여성과 교제하는 것을 참을 수 없으니까’ 야오이팬픽이 이루어진다는 평가는 꽤나 일차원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초기에 그렇게 시작하는 팬피커(팬픽을 쓰는/읽는 사람이라는 나의 조어;)가 있을지 몰라도,

그리고 야오이 전반은 모르겠지만- 야오이 팬픽을 읽거나 쓰는 역사가 쌓일수록 팬피커들을 단순히 여성-남성관계를 남-남연애물로 옮긴 것에서 벗어나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 ‘꽃미남’에서 발생했을 ‘단순한 꽃수’를 점점 지양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다. 더 대등한, 더 가까운, 더 적극적인, 더 독립적인 그런 수.

먼저 유혹한다. 더 적극적이다. 강간으로 시작한 관계라도 극복할 수 있다. (사실 동성간의 강간도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는 이성간 강간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에게 피해를 남긴다고 생각한다. 이런 어려운 말이 아니라 어쨌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양당사자 모두 여성인 나와 상관없는/거리를 둘 수 있는 야오이의 경우에 강간이라는 것은 치유가능한/너무나 사랑해서 어쩔 수 없었어, 라는 쉬운 설정이 가능한/혹은 어떤 특별한 경우의 관계 혹은 시작인 설정이 된다. 다른 얘기지만 성폭력도 치유가능한 상처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블로그에 퍼왔던 [피해자다움]이란 글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성폭력피해자는 ‘피해자답게’ 있어야/처신해야 그 상처를 인정받는다. 어쨌든 절대적으로 치유받지 못하는 상처, 라야 피해자임을 인정받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정말 젠장맞을 일이다.)
어쨌든 동/성간의 일인 것이다. 여성-남성의 관계라면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행동이라도/여성인 설정이라면 수치심으로, 열등감으로 가능하지 못했던 행동이라도 수가 대신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적인 권력에서 쉽게 벗어나 대등한 관계가 가능하다. 그래서 야오이는 전형적인 여성-남성 연애담의 형태를 차용했더라도 전복성을 내재하고 있다.

+ 사실 성폭력이 단지 성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때, 야오이물에 많은 강간물은 마찬가지로 힘을 과시하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투영하는 것일까? 남성이 여성을 강간한다는 설정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해 지극히 두렵거나 지극히 불쾌할 뿐이다. 하지만 야오이물에서는 강간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랑/스/런/남/자를 깔고뭉개는- 쪽이 될 수 있다. (이런 적나라한 표현이라니;;;;)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이 ‘전복적인 쾌감’이 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이건 단지 지금 구조에서 ‘전복적인 쾌감’일 뿐 결국 지양해야 할 쾌감이 되겠군. (당연한 것 아냐;; 하지만 윤리에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말하기는 역시/아직 민망하다)

그리고 성차에 따른 권력이라는 것은, 폭력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꿈의 끝은 언제나 자명종’에서, 사실 어쩌면 루카와와 하나미치와 하나와 야츠데가 이루는 가정은 평범하다. 하나미치는 회사원이고, 두 아들내미는 보육원에 가고, 루카와는 농구가 취미이기는 하지만, ‘전업주부’다. 하지만 이 부분은 별로 거리끼지 않았는데 그 보육원- 아카기는 마치 원장처럼 신문을 보거나 하고 있고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항상 아야꼬와 하루꼬라는 데서는 어쩐지 불편했다. 왜 아카기는 애보는 일 안하는 거야, 하면서. 이렇게 여성-남성의 관계에서는 현실적인 자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즐길 수 없다.

그래서 아직은 해방되지 못한 시선. 직시하지 못하는 욕망.
물론 꼭 자신의 처지와 시선에서만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꼭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 더 고민해볼 것
; 청년하위문화
; ‘남성향’이란 것은 도무지 어떤 것인지?
; 어쨌든 나는 모든 ‘하위문화’에서 전복성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과도할 수도 있다. 왕왕 그런다.

++ 쓰던 글이라 문장도 엉망, 존대말이었다 반말이었다;; 그렇습니다. ;;;
+++ 여기까지는 그냥 야오이얘기가 되겠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끼어드는 팬픽과는 또 일정한 간격이 있겠습니다. 그것에 대한 고민은 또 나중에.

This Post Has 3 Comments

  1. 슬라임군

    음, 잘읽었습니다. :D ;;; 저도 생각해봐야겠어요. ( …

  2. Cain

    허접한 글에 굳이 생각해보실것까지야;;;;;;;;;;;;;; 민망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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