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하려고 당근을 꺼내보니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는데도 싹이 났다. 빛을 못 봐 허여멀건한 당근싹을 보고 있다가 머리 부분만 댕겅 잘라내고 나머지 부분으로는 카레를 만들었다. 밥먹고 설겆이하고 부엌을 정리하는데 싱크대 한 구석에 굴러다니는 당근 머리가 눈에 밟힌다. 좀 들여다보고 있다가 작은 접시에 물을 받아서 아랫부분이 잠기게 담가 두었다.
엄마가 보시면 어차피 못 키울 것 뭐하러 이래 두었냐고 잔소리를 하시겠지. 어렸을 때부터 참 별 것들을 다 키워봤다. 당근싹 무우싹 콩나물 양파 수박씨도 심어 보고 호박씨도 심어보고. 싹난 것에 관심을 둔 어린애가 키우기에 당근은 만만하지 않다. 빛을 받고 물을 먹어가며 비리비리한 싹을 쑤욱 내밀어보지만 그뿐이다. 길게 나온 당근싹은 필요한 만큼 양분을 못 얻고 곧 시들고 만다. 싹이 길게 난 후에는 당근에게 무얼 해 주어야 하는지 어린애가 아닌 지금도 모르겠다. 그럴 당근의 운명을 알면서도 당근싹을 보면 이렇게 접시에 담아 삶을 억지로 연장시키는 이유는 뭘까. 이 당근싹은 조금이라도 더 살게 되어 좋을까, 고통만 연장시킬 뿐이어서 괴로울까. 사실 식물의 생태란 내 이해의 영역이 아니어서, 난 단지 얘가 삼투압의 차이로 물을 빨아들이고 빛이 비치는 반대쪽이 조금 더 자라서 빛 쪽으로 구부러질 뿐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다. 자기 손을 들어 물을 마시고 근육을 움직여 빛을 바라보는 호모 사피엔스로서는 식물의 행복이란 짐작할 바가 못된다.
아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싹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기가 저어되는 잠시의 가벼운 감상일 뿐일 것이다. 얘가 조금 더 자라서 화분의 흙 속에서 시들건, 화분에 옮겨가기도 전에 시들어버려서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에 가든 그 연장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것도 감상일 뿐일 텐데.
생물학에서 동물과 식물을 구분하기도 어렵지만 산 것과 죽은 것을 구분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깻잎을 좋아하는데, 그냥 두면 사흘을 못 가 시들어버리지만 비닐에 물이랑 같이 넣어서 두면 일주일 동안 싱싱하지요. 바깥에 나가 흙 속에 꽂아두면 혹시 뿌리가 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우리가 먹는 식물에게 애잔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을 수도 있는 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식물을 재배한다고 볼 수 있지만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욕구에 맞추어 유전자를 변형시킴으로써 인간의 손에 의해 자신들의 번영을 꾀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라고도 하는군요. 그런 식물들이 인간을 이용해서 전 세계에 퍼져나가게 되었다는 거지요. 그런 주장을 쓴 책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는 바람에 제목을 까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