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2003/푸른역사
조선의 정사에도 야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생활사를 민중의, 군도와 땡추, 도박, 금주령과 술집, 과거, 감동과 어우동, 반촌, 검계와 왈자, 별감, 탕자의 항목으로 나누어 정리한 책. …인데 각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관심에 따라 자료를 모아두었다는 느낌이 든다. 오, 이런 일도 있었구나 정도의 얘기들은 빼곡하게 차 있는데 딱 그 정도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역사서는 아니고 ‘풍속 기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만큼 그 점은 감안해야겠지.
아래 모로아의 책과 비교하면 이렇게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깊이가 부족하다고 할까. 이 책도 오랫만에 다시 폈는데, 옛날 책이라 글씨도 작고 소제목도 인색하게 붙어 있는 것이, [조선의 뒷골목 풍경]식으로 편집하면 두권은 나오겠더라. 사실 제목을 듣고 이 정도를 기대했던 터라 좀 아쉽다. ㅜ.ㅜ
[튜더시대의 농촌생활을 상상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벽돌담을 둘러싼 정원이 있는 회색 돌로 지은 우아한 영주의 저택이 바로 향사이고 치안판사인 사람의 집이다. 지방에 따라 관례로 되어 있는 공유경지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소유권에 관한 분쟁이 자주 일어나 경제관의 골치거리가 되고 있었다. 주중에는 모두가 일을 했고 일을 안 하면 경범죄에 걸리게 되어 있었다. 주일에는 활쏘기 연습을 해야 하며 아이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만 남아 있는 귀찮은 일로 되고 말았다.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도 경찰관이 제지했다. 교회시간을 제외하고 그들은 선술집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놀았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은 의무였으며 안 나가면 빈민구호비로 벌금을 물었다. 모든 행동이 감시되었던 것이다. 마녀와의 관계는 중죄였고 처벌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다. 노파 중에는 가축이나 사람을 저주했다는 혐의를 받는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 치안판사는 어깨를 들어 호통을 쳤으나 연행해 온 마녀를 태워 죽이지는 않았다.
촌락의 범위는 아주 좁았으며 합법적이고 정당한 이유없이 자기 교구를 떠나는 사람은 없었다. 순회연극의 배우는 치안판사의 서명이 있는 허가증을 가지지 않고는 순회공연을 다닐 수 없었다. 허가증이 없으면 유랑민으로서 태형, 또는 낙인이 찍혔다. 대학생이 여행을 하려면 재학증명서를 휴대해야만 되었다. 농사일과 기타 많은 부락의 공공의무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차차로 중앙정부의 활동을 보게 된다. 새로운 포고가 국왕의 이름으로 설교단이나 시장 네거리에서 공표되었다. 요우멘은 석 달에 한 번씩 치안법정에 참석차 도읍으로 나간다. 치안판사는 국왕으로부터 사령장을 받는다. 주의 최고참 장관은 때때로 런던으로 가서 대신들과 면식을 갖게 된다. 모든 촌락에 서서히 국가라는 거대한 신체의 생명있는 세포가 형성되어 갔다.] 앙드레 모로아, 영국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