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몇 권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스뜨루가츠끼 형제
엉뚱하고 허무맹랑한 구석이 있어서 좋았다. 덥지 않은 곳에서 읽고 있어도 축축 늘어질 것 같은 폭염속 레닌그라드(라고 한때 불렸던 곳)의 낯선 지명들도 마치 화성의 어느 골목 얘기같아서 좋았다. 아내가 친정에 가서 고양이밥과 끼니를 걱정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겆이를 하면서도 머릿속 한 구석에서 구의 표면을 따라 적분을 하는 천문학자가 신선해서 좋았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어디서도 연구할 수 있다는 치기도 좋았다.
소설의 진행은 갑자기 아무것도 묻지 말라며 자유와 행복의 양자택일의 길로 접어들고, 그곳에서 딱 끝나버린다. 자유와 행복이라… 난 자유로우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유를 택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 없는 자 뿐인걸까.

최후의 등화관제/론 허바드
전쟁과 황폐함외에는 남은 것이 없는 대륙의 어느 한 곳과 사람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은 압박감을 줄 정도였지만, 이렇게 군대의 순수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은 불편하다. 특히 직접 전쟁을 치루고 살아남은 작가들의 글에서 이런 것이 느껴지는데, 자신과 동료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정치가들에 대한 분노, 그들의 무능력함과 비열함에 대한 비아냥,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에서 나오는 고독감과 그런 상황을 겪지 못한/않은 일반인들에 대한 우월감, 이런 것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당신들의 그 분노를 어떻게, 풀 길이 없는 것인지.
이 불편함은 군인의 쿠데타를 몇 번이나 겪은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미사고의 숲/로버트 홀드스톡
미사고란 mith와 imago를 결합한 단어로, 전설과 관련된 각종 심상이 실제화한 것을 일컫는다. 책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이 숲은 사람들이 집단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신화적인 심상을 실제로 형상화하는 숲이다. 침략에 맞닥뜨릴 때면 나타나는 영웅이라거나, 비슷한 설화가 여러 지역에서 따로 따로 전승되는 것이 이 숲의 설명근거다. 이런 설정만으로도 재미있었는데, 인물들은 숲의 바깥에서 설화의 발생과 심상의 형성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숲으로 들어가고 미사고들을 만나고 그렇게 천천히 설화가 된다.
숲밖에 보이는 미사고는 이쪽 세계의 전설이지만 숲속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미사고들 사이의 전설이 된다. 그리고 차츰, 세계의 끝을 향하는 것 같은 거친 여정. 크리스찬은 귀네스를 찾기 위해 미사고들 사이에서 무엇을 한 걸까? 켈트족이나 그 이전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미사고들 사이에서 악한 전설이 된 크리스찬과 이방인을 죽이는 그 동족, 구원의 전설이 되는 스티브. 이 두 사람은 왜 같은 전설 속에서 다른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일까… 작위적아냐? 하는 까칠함은 소설의 거칠고 어둡고 원시적인 분위기속에서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까칠함 하나. 어떤 소설이든 모든 인물이 주체가 될 수야 없겠지만, 귀네스는 그렇게 매력적인 전사로 그려졌음에도 결국 객체다. 결국, 이런 생각이 들어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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