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책

아가사 크리스티의 크리스마스 살인, 죽음과의 약속, 비뚤어진 집을 읽었는데 줄거리는 잊어버리고 제목만 보고 고른 책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대가족을 배경으로 가족의 중심이 되는 부유한 노인이 살해되면서 전개되는 내용이다. 노인이 너무나 강력한 인력으로 가족들을 끌어당기고 있어서 가족 관계가 매우 비뚤어져 있고 그것이 중요한 모티브가 되지만, 어차피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대가족이거나 혼자 살고 있거나 둘이 살고 있거나 하숙하고 있거나 살해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별 의미가 있나 싶다…ㅎ
생각해보면 만나지도 않은 프랑스인에 대한 편견을 가득 심어준 것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이었는데, 이때 영국인들의 가장 큰 타자는 프랑스인들이라 프랑스인과 만난 혹은 프랑스인의 얘기를 듣는 등장인물들은 별 사소한 데에도 프랑스인이란… 하고 맘속으로 사족을 붙인다. 변덕스럽고 으스대고 화려한 것, 성, 연애에 관심이 많고 이해할 수 없는 프랑스인들…ㅎ 정확하지만 잔인한 독일인은 훨씬 덜 등장하고 미국인도 의외로 많이 등장하지 않으며 스페인인들은 독일인과 비슷한 비중으로 성격 급하고 살인사건의 주변에 있으면 먼저 의심하기 좋은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그저 외국인이라 에르큘 포와로도 벨기에인이란…!하는 시선은 받지 않고 외국인이라서 그렇군, 하는 시선이나 받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인들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정말 말이 많다고 하는 걸 보면 영국인들도 말이 많아서인가 한국인들은 말이 적어서인가 궁금한 것이다.
보다 요즘의 영국 소설들은(별로 안 읽어봤지만. 하긴 내가 어느 작가의 책을 읽는다해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보다 많이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보이지는 않지만, 프랑스인에 대한 이런 편견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영화에서도 엘리노어 릭비의 너무나 프랑스인다운 어머니라든가 버드맨의 프랑스인 기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버드맨에서 주인공이 자기 작품을 홍보하면서 세 타입의 기자를 만나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불쾌했는데 불쾌한 기분은 이 영화가 위악적인 분위기로 계속 조장하는 것으로, 작품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현학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프랑스인 기자나 작품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유명한 배우를 만난다는 사실에만 들떠 있고 영어도 잘 못 하는 일본인 기자나 작품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배우의 가십에만 관심이 있는 여성 기자가 정신없이 질문을 퍼부어대는 장면에서는 과연 작품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나 들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를 매우 호의적으로 묘사한 영국인의 작품으로는 얼마 전 작고한 피터 메일의 작품이 있군요. 피터 메일의 작품들이 한창 인기있을 무렵 프로방스 지역 주민들이 신물이 날 정도로 영국인 미국인들이 몰려들었다는데 그동안 맘속에 쌓아둔 프랑스에 대한 편견을 다 날려버릴 정도로 작품이 매력적인가 봐요.
책 얘기를 좀 써야지 하고 시작했지만 맘대로 흘러가는 대로 쓴 글이군요. 심지어 중간에 문장도 바뀌고…ㅎㅎㅎ

* 링크 하나
http://www.dailymail.co.uk/wires/pa/article-5287571/Director-Ridley-Scott-pays-tribute-A-Year-In-Provence-author-Peter-Mayle.html

This Post Has 4 Comments

  1. 캐스트너

    예전에 한번 블로그에 시릴 헤어의 영국식 살인 리뷰를 쓰면서 지나가듯 지적한 적이 있는데
    크리스티 소설을 비롯해 그 시기 영국 추리소설들, 그러니까 황금기 영국 추리소설들은 영국인의 insularity를 풍자하기 위해서 그들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 외국인 혐오증을 너무 과하게 묘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풍자가 정곡을 찌른다기보다는 기계적으로 느껴질 정도죠.
    작가가 작품에서 실제로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기보다는 그런 편견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은, 외국인이라고 무턱대고 그 인물의 인품character이나 진실성integrity을 의심하고 짐짓 용의자로 몰아가던, 이를 테면 편협한 마을 수다쟁이 부인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결국 범인은 십중팔구 영국인으로 드러나는 결말에서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런 소설들에서 범인이 외국인, 그 타자성이 대놓고 드러나는 사람인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는 그래서 요즘엔 오히려 그런 소설들이 독자에게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다기보다는 반대로 영국 시골 마을 어딜 가든, 편협한 지방근성parochialism으로 똘똘 뭉친 속물이 있다는 편견, parochial Briton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예요. 어쩌면 그런 스테레오 타입이야말로 자신은 교육과 견문을 통해 그런 지방근성을 떨쳐버렸다고 자부하는 cosmopolitan한 교양인, 즉 작가가 만들어낸 타자일 수도 있어요.

    아 맞아요. 작가의 실제 편견이라기보다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풍자하고 있는 건 포와로가 그런 편견을 잘 써먹는 것에서도 알 수 있지요. 크리스티 여사가 탐정을 만들면서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이나 하다못해 독일인도 아니고 벨기에인으로 한 것은 뭐 그때 상황도 있겠지만 그 편견을 잘 써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골랐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크리스티 여사 자신으로 비유되는 올리버 부인이 자기의 핀란드 탐정 스벤에 대해 얘기할 때도 난 핀란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데 왜 핀란드 탐정으로 했을까 하고 종종 한탄하는 것도 그래서 더 재밌어요. 암튼 그런 편견이나 스테레오 타입을 풍자하기도 하고 서슴없이 써먹기도 하는 현란한 솜씨에는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본문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건 어쨌든 그런 걸 제가 배웠다는 얘기구요ㅎㅎ
    범인 얘기를 하니 또 생각나는데 마찬가지로 영국인 내부의 타자인 하인 계층도 쉽게 의심을 사지만 크리스티 여사의 소설에서 다른 계급의 사람사이에 살인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역시 범인은 우리 안에 있다의 시조이신 것 같아요…ㅎ

  2. 캐스트너

    Re: Insularity & Cosmopolitanism in Britain

    뭐 황금기 추리소설에 묘사되는 영국인들이 어떻든 간에 영국은 마르크스에게도 졸라에게도, 또 위고에게도 망명처를 제공한 나라였지요. 20세기에 무수한 유대계 지식인들이 정착한 곳도 영국이고요. 그러니 작금의 브렉시트 사태에 사이먼 샤마 같은 역사가들이 영국이 언제부터 외국인에게 문을 걸어 잠그는 나라가 되었나, 개탄하는 것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약간 딴 얘긴데,
    황금기 추리소설 캐릭터 가운데 가장 세련된 코스모폴리터니즘의 소유자라면 아무래도 로드 피터 윔지가 아닐까요?
    (프랑스 와인을 그렇게 좋아하는 고메gourmet가 아닙니까? ㅎㅎ)
    그리고 말년에 세이어스 여사가 ‘롤랑의 노래’를 영역한 걸 보면, 또 피터 경이 자신과 찰스 파커와의 관계는 롤랑과 올리비에의 관계와 같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피터 경은 확실한 친프랑스파입니다. ㅎㅎ

    아, 그리고 우리, 오라스 베르네의 피를 타고 난 홈즈도 잊으면 안 되죠. 추리소설에서 친프랑스파 한 명 더 추가요~

    홈즈야 프랑스의 수많은 어려운 사건들을 해결해줬고 훈장도 받았는데 프랑스가 해 준 것은 헐록 숌즈… 흑흑흑

    이 글 쓰고 나서 프랑스 작가들의 영국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매우 잠깐 생각해봤는데 안 떠오르더라구요. 언뜻 생각나는 것이 영국도 아닌 네덜란드지만 매그레 경감이 네덜란드로 사건 수사 하러 가서 네덜란드 여성들은 참 씩씩하구나 하고 감탄하는 부분이었는데 정작 심농은 프랑스 작가가 아니라서-ㅂ-

  3. 캐스트너

    제가 말한, 황금기 추리소설들의 외국인 혐오에 대한 풍자라는 것이 너무 상투적이고 기계적으로 느껴져서 사실상 풍자의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그말입니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품고 있는 캐릭터가 너무 많이 등장해서, 로널드 녹스나 S.S.반 다인이 추리소설의 10가지, 20가지 법칙에서 내세운, 범인이 쌍둥이여서 안 된다, 범인이 집사나 하인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로 범인은 외국인이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외국인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편협하고 보수적인 캐릭터가 등장해야 한다 같은 법칙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진다는 거죠. 상투적인 풍자는 더 이상 풍자라고 할 수가 없어요.

    특히 크리스티 소설에서 ‘그 사람은 외국인이니까~’라고 꼭 토를 달며 어깨를 으쓱하는 중년 부인은 이쯤 되면 스테레오 타입을 넘어서 거의 플롯을 돌아가게 하기 위한(레드헤링을 던져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수법에 질려버릴 지경;;)

    소위 범인은 우리 안에 있다는 법칙은 크리스티가 시조라기보다는 글쎄…저는 생각이 다른데요, 추리소설 장르의 기원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과가 아닐까, 저는 추리소설의 기원이 전도된 고딕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딕소설은 ‘우돌포의 수수께끼’나 ‘이탈리아인’에서처럼 이탈리아, 스페인의 어느 고성, 동굴, 오래된 수도원, 지하감옥dungeon……한마디로 이국적인 공간이고 거기엔 사악하고 불길한 이국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죠. 고딕소설도 플롯을 추동하는 것은 분명, 막판에 만천하에 드러나야 할 수수께끼입니다. 보통 그 수수께끼란 출생의 비밀인 경우가 많고요. 따지고 보면 추리소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추리소설은 그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을 더 이상 이국적인 공간, 판타스틱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일상, 독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가져왔죠. 그렇기 때문에 범인을 비롯해 등장인물들도 그 일상 공간에 더 어울리는, 독자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인물들로 변신한 거죠.

    그런데 추리소설에서 고딕소설의 흔적이 가장 분명하게 남은 것은 탐정 캐릭터예요. 고딕소설에서 바이런풍 캐릭터가 순화된 게 탐정 캐릭터예요(홈즈는 한세기만 먼저 태어났으면 분명 바이런 장시의 주인공으로 딱이었을 겁니다). 세상이 나를 왕따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왕따시켜주마, 세상과 불화하고 사회society를 거부하는 그 아웃사이더들이 추리소설에 넘어오긴 넘어왔는데 범인 아니라 탐정으로 변신한 거죠. 황금기 추리소설에서 탐정들은 독특한unique 개인입니다. 체제 내부에 속한 사람은 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못해요. 탐정은 그 체제 밖에 있는 사람, 혹은 체제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 아웃사이더여야 합니다. 그는 계급이나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진상을 꿰뚫어보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뒤팽도 홈즈도, 푸아로도 다른 등장인물들과 격이 다른 독특한 개인이 된 거죠. 또 그래서 체제의 수호자인 탐정이 그 체제의 아웃사이더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거고요.

    심농은 프랑스어권 작가라고 봐야겠죠.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또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많이 썼으니까요. 여기서 국적은 중요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어차피 벨기에라는 나라 자체가 불어 사용자와 네덜란드어 사용자가 합쳐진 나라니까요.
    그리고 매그레가 바라보는 네덜란드 여성들에 대한 묘사는 호의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저는 그것이 프로테스탄트 경건성으로 무장한 네덜란드인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강화하는 방식이라고 느꼈어요. 생활력이 뛰어나고, 어떤 경우엔 거의 억척스럽다고 할 수 있는 성실한 프로테스탄트 네덜란드 여성들, 베르메르의 회화에 나오는 우유를 따르고 집안을 청소하는 여자들의 20세기 초반 판본 같다고 할까? 문제는 정작 그런 여성이 범인으로 드러날 때인데 그때 작가는 그 프로테스탄트 경건성과 그것이 강제하는 생활방식이 숨막힌다고 암시하는 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의심합니다.

    뭐, 재미난 것은 제가 읽은 매그레 소설들은 20세기 전반기를 묘사하고 있고, 그때는 네덜란드가 여전히 그런 나라였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데, 요즘 네덜란드 하면, 마리화나 합법화, 성매매 합법화….되게 자유분방하고 코스모폴리턴한 나라, 적어도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들은 그런 이미지 아닌가요?

  4. 캐스트너

    이거 댓글이 길어져서 제 블로그에 포스트로 따로 적을까 하는데 이 글 주소도 링크해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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