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 번역에 나타난 한국어 2인칭 대명사의 사용양상/채서영 (언어와 언어학 44집)
한국어는 전반적으로 대명사 사용이 발달하지 않았고, 특히 2인칭의 경우에는 대명사라고 간주할 어휘는 많이 있지만 (‘자네,’ ‘그대,’ ‘임자’ 등) 그 사용이 매우 미약하다.3) 박정운(2005)은 독자적인 어휘적 의미를 지니는 ‘임자,’ ‘어른(어르신),’ ‘선생님’ 등은 대명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며 한국어 2인칭 단수 대명사로 ‘너,’ ‘자네,’ ‘자기,’ ‘당신,’ ‘그대’만을 인정했다 (p. 82). 널리 알려진대로, 한국어에서는 화자가 자신보다 위계에서 앞서는 상위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2인칭 대명사가 아예 없다. 이러한 한국어 2인칭 대명사의 사용 방식은 한국어로의 번역에서도 거의 절대적인 제약조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상위자에게 쓰인 것이 분명하거나 위계의 상․하위 여부가 모호할 경우에 영어 2인칭 대명사 ‘you’를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번역하는 문장이 소설이나 희곡라면 선행사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어서 한국어 입말에서 하듯이 기존에 사용한 호칭을 되풀이 하면 된다. 그러나 시에서는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고 문맥을 통해 대상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영어 2인칭 대명사 ‘you’는 시에서 번역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 문제의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은 한국어가 주어와 목적어 없이도 의미가 통하는 대명사 탈락 언어이므로 영어의 2인칭 대명사를 아예 번역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대명사가 자주 나오는 경우에 이들을 모두 번역하지 않기도 어렵다. 그 다음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한국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2인칭 대명사 ‘너’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분명한 하위자, 혹은 매우 친밀한 동급의 청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대명사라는 제약이 있고 시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 번째 방법은 ‘너’ 외의 새로운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영시 번역에서 다수 관찰된 ‘당신’과 ‘그대’라고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한국어의 2인칭 대명사는 입말에서는 하위자에게만 사용이 가능하지만, 글말에서는 상위자와 친밀하지 않는 청자에게도 사용되고 있다. 영시 번역에 나타난 이와 같은 ‘그대’와 ‘당신’의 분포는 글말에서 이들이 점차로 더 많이 사용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아울러 본 연구에서는 총칭적인 용법으로 쓰인 ‘you’의 번역과 같이 비슷한 맥락인 경우 남성 번역자 (이재호, 피천득)보다 여성 번역자 (장영희)의 번역에서 ‘너’ 보다 ‘당신’이 더 자주 선택되었다. 즉, 시인은 물론이고, 번역자의 여성성도 영어 2인칭 대명사의 번역에서 가장 공손한 표현인 ‘당신’의 사용에 영향을 주는 요인임이 밝혀진 것이다.
3) 본래 한 언어의 인칭대명사 체계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폐쇄적인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말 2인칭은 어느 정도의 유동성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예를 들면, 주로 3인칭의 재귀 대명사였던 ‘당신’이 2인칭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 1인칭의 재귀대명사였던 ‘자네’와 ‘자기’를 2인칭으로 사용하는 것 등이다 (김미형 1995). 2인칭으로 사용하는 ‘자기’는 글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